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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모임, 여성들의 화제, <무지개 인생> 오늘도 여러분 곁을 찾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옥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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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보기 드물어진 우리나라 20전짜리 지폐에는 한복차림의 조선족 처녀와 투쟈족 처녀가 나란히 실려 있지요. 그리고 2원 지폐에는 위글족과 이족, 1원 지폐에는 뚱족과 요족, 10전 지폐에는 만족과 고산족 등 여러 소수민족 형상들이 짝지어 등장했습니다다. 80년대판 지폐가 갖 나왔을때 적지 않는 조선족들이 지폐속 조선족 처녀는 누굴까, 그리고 지금와서는 그때 그 조선족 처녀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걸까 무척 궁금하겠지요.

사실 올해 45세 난 주인공 소춘희씨는 현재 북경에 살고 있으며 딸 하나 둔 평범한 주부입니다. 긴 머리에 동글스럼한 얼굴이 단발의 40대 중반으로 변했지만 자태는 여전히 고왔습니다. 소춘희씨가 '20전 지폐'의 주인공이 된 것은 1979년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때 소춘희씨는 북경에서 국내 소수민족들을 소개하는 '민족문화궁'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요. 그해 여름 인민은행에서 민족문화궁에 찾아와 거기서 근무하고 있는 여러명 소수민족 처녀들의 사진을 찍어갔습니다. 당시 정경을 회상하면서 소춘희씨는 "신판인민폐에 얼굴이 실린다고 해 꽃무늬 한복을 입고 머리를 정성껏 빗고 찍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인민은행에서 파견한 사진사는 민족문화궁앞에서 여러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조선족인 소춘희씨와 투쟈족인 황씨만 지폐에 실렸던 것입니다. 당시 투쟈족은 800만명 정도로 중국 56개 민족에서 인구수 7위를 차지했고 조선족 인구는 약 190여만명에 이르렀습니다.

중국정부는 민족문화궁를 새롭게 건설하고 민족특색을 살리기 위해 문화궁 안내원을 전국범위의 소수민족 가운데서 뽑았는데 소춘희씨가 바로 행운스럽게 조선족 대표로 선발됐습니다. 그는 당시 연길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연변박물관에 근무하던 15살의 소녀였습니다. "얼굴이 예뻐서 뽑혔는가"하는 물음에 소춘희씨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아버지의 공무원 성분과 한족중학교를 다녀 중국말까지 잘한 덕분이었다는 것입니다.

지폐의 조선족 모델로 된 경력은 소춘희씨의 생활에 큰 영향은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정보전달이 상대적으로 뒤떨어지고 대중의 주목도가 상대적으로 약한 시기라 그후에도 그는 여전히 사업을 착실히 하면서 평범하고 안정한 생활을 지속했습니다. 소춘희씨가 지폐속 조선족 모델이라는 것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2006년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지폐에 실렸던 투쟈족 황지핑씨가 그를 찾는다는 소식이 연변의 신문에 실리게 됐습니다. 이후부터 소춘희씨는 연변언론에 여러번 소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지폐속 주인공인 걸 알아보던가 하는 물음에 소춘희씨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습니다. "옆 얼굴만 실려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한번은 어머니가 백화점에서 20전 지폐를 꺼내 보이면서 이 소녀가 내 딸이라고 말하자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든 기억밖에 안나요."라고 말했습니다.

2006년후 소춘희씨는 국내언론에도 여러번 나왔습니다. 지난해 10월에 발간된 중국은행연합회 잡지엔 '20전 인민폐의 아가씨들'이란 제목으로 그와 황씨에 대한 기사가 실렸고요. 2008년에는 'TV는 사랑을 싣고'와 비슷한 향항 TV 프로그램에도 요청됐었습니다.

그와 같이 지폐에 실렸던 투쟈족 처녀, 현재는 호남성 농업청 부청장으로 고위직 공무원이 된 황지핑이 그를 찾아 30여년만에 다시 만나게 된 두사람은 첫만남에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합니다. 황씨는 지폐모델로 됐던 경력이 알려지면서 그의 고향 호남성에선 유명인사로 됐답니다. 광고를 찍거나 홍보업무를 맡아달라는 요청도 많았다고 하지만 소춘희씨에겐 그런 유명세와 행운이 뒤따르진 않았습니다.

그는 북경에서 중앙민족대학을 졸업하고나서 바로 1989년 한국기업에 취직했습니다. "SK그룹 중국시장팀 직원으로 채용됐어요. 번역 일을 맡고 중국어도 가르치며 2년간 일했고 중국 SK 지사에서도 1년간 일했어요."라고 소춘희씨는 자신의 경력을 간단하게 설명해줬습니다.

그후 소춘희씨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북경대학에서 연수를 받다가 북경대학 화학학부를 졸업한 회족출신의 사업가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남편도 그가 지폐모델이였다는 일에 대해 반신반의해왔답니다. 소춘희씨는 "요즘 자주 언론에 나오자 남편도 지폐모델이었던 저의 존재를 인정해 주기 시작했어요."라고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북경에서 외국어를 가르치는 언어학원에서 10여년을 일하다가 작년부터 건강이 좋지않아 쉬고 있다는 소춘희씨는 "조선족 대표로 지폐 주인공이 됐다는 사실이 제가 여태까지 참답게 살아올 수 있게 만든 버팀목"이라고 말했습니다.

인민폐 20전 지폐에 조선족 모델로 실렸던 소춘희씨의 이야기였습니다. 노래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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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리현숙씨의 글 <사과에 기탁한 사랑의 마음>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전에 오빠가 한국으로 떠날 때 짐을 잘 정리했는가 살펴보던 어머니는 배 4개를 발견했습니다.

“아니, 이건 왜 넣었니?

어머니는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듯 놀란 어조로 말했습니다.

“차안에서 시원하게 먹을려구요.

“안돼! 배는 리별을 의미하는거야. 길 떠나는 사람은 절대로 배를 안가져간단다.

그렇게 딱 잡아떼며 어머니는 배를 몽땅 꺼내놓고 백지에 정히 싼 사과를 가방에 넣어주는 것이였습니다.

“사과는 평안을 의미한단다.

어머니의 말에 우리 형제들은 별거 다 믿는다며 웃었지만 사과에 평안을 기탁하는 어머니의 마음만을 잘 알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간 오빠는 바다생활을 하다보니 자주 전화를 할수가 없었습니다. 지어 근 반년씩 무소식일 때도 많았습니다. 소식이 없을 때마다 어머니는 오빠 가방속에 '평안사과'가 있기때문에 무사할거라며 혼자서 중얼중얼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긴긴 밤을 늘 눈물로 지새우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2년후 오빠는 갖은 고생을 다 겪고도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오빠는 어머니가 넣어준 사과를 바다에까지 지니고 갔더니 ‘평안사과’가 지켜줬는지 아무런 고생도 안했다며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그 말에 어머니는 “그럼 그렇겠지, 내가 넣어준 ‘평안사과’가 있는데 누가 감히 내 아들을 건드리냐”며 우스개를 하더니 갑짜기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오래동안 참아온 눈물이였습니다.

결혼후 나도 사과로 평안을 기도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본받아 남편이 출장갈 때면 잊지 않고 가방에 사과를 넣어주었습니다. 그런데 번마다 넣고 간 사과를 그대로 도로 가져오는 남편이였습니다.

“왜 먹지 않았어요.

내가 의아해서 물으면 남편은 늘 사과가 들어있는 것을 그만 잊어버렸다며 허허 웃고맙니다. 잊음이 그렇게 헤프고야 어떻게 교원노릇 하느냐며 나무람하지만 넣고간 사과와 함께 아무탈없이 돌아온 남편이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작년에야 그런 것이 아님을 알아버렸습니다.

한번은 남편이 한학교에 출근하는 림선생님과 함께 할빈으로 학습을 떠나게 됐습니다. 나는 예전처럼 잊지 않고 가방에 사과를 넣어주었습니다. 차안에서 림선생님이 목이 컬컬하다며 그 사과를 먹자고 했더니 남편은 다른 것은 괜찮아도 그 사과만은 안된다고 답하더랍니다.

“이 사과는 안해가 출장길이 평안하기를 바라면서 넣어준건데 먹어버리면 평안이 없어지잖습니까. 그러면 괜히 불안해진단말입니다.

림선생님은 나를 보고 사과 한알이 어찌 사람의 평안을 지켜주는가 하면서 별 웃기는 부부를 다 봤다고 우스개로 말했습니다. 림선생님의 말을 들으면서 나도 어머니처럼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내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아주는 남편으로 하여 감동됐던것입니다.

어머니나 나나 사과가 평안을 지켜준다는 말을 믿어서가 아니지요. 단지 평안하기를 원하는 그 마음을 사과에 기탁했을 뿐이지요. 사과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남편이나 오빠도 사과가 있으면 평안다는 것을 믿어서도 아니며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대방의 마음을 읽어냈기 때문에 선뜻이 받아들인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그마한 사과 한알을 주고받는 가운데서 우리 가족은 평안을 주고받았으며 동시에 사랑도 함께 주고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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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시공원 맞은켠 정보산업원 2층에서 제일한복상사를 운영하는 업주이며 연길시 개체기업가협회 부회장인 리옥녀 리사장은 1981년에 개체업에 종사한 이래 근 30년간 오직 우리민족의 전통한복만을 고집하는 외길인생을 살아오면서 주위에서 찬사를 받아왔습니다.

30년전 우리 민족 한복에 메료된 리옥녀씨는 연변에 한복점이 없는 공백을 메우고 중국에 사는 조선족 동포들에게 아름다운 우리 민족의 한복을 널리 알리고저 한복업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한복업을 경영하는 첫날부터 리옥녀씨는 고객만족, 신용제일을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다양한 디자인, 품위 있는 한복으로 거듭나는 오늘의 제일한복을 이끌어왔습니다. 최고급원단, 편안한 디자인으로 한복의 전통적인 기본을 지키는 한편 현대적 감각으로 교묘하게 조화를 이룬 제일한복은 가격면에서도 대중화를 추구해 인기가 식을줄 모르고 있습니다.

출중한 업적으로 1986년에 연길시 정협위원, 1987년에 연길시 개체기업가협회 부회장으로 당선된 이래 리옥녀 리사장은 개체기업가들의 대변인으로서 정협위원의 직책을 다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체기업가들을 동원해 사회에 많은 선행을 베풀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년래 전국범위에서 일어난 크고작은 사건사고와 자연재해에 커다란 관심을 보여 여러차례 의연금을 모집해 피해지역에 지원했으며 그 자신만 해도 몇년래 15여만원을 불우이웃돕기에 헌금했습니다.

다년간 사업경영에서 살뜰한 봉사와 성실한 태도로 널리 인정받고 뛰여난 성적을 취득한 리옥녀씨는 사회적으로 많은 영예도 따냈습니다. 그는 선후로 연길시 선진개인”, “연길시 우수개체공상호”, “3.8붉은 기수”, “길림성 선진개체로동자”, 그리고 길림성과 연변자치주 및 연길시 로동모범”, 연길시 특수공헌모범자등 수두룩한 영예를 따안았습니다.

하지만 리옥녀씨는 이처럼 많은 영예를 따냈다고 흡족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제일한복이라는 한길로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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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추한 녀자는 없고 게으른 여자가 있을 뿐>이라는 말과같이 부지런한 녀자만이 아름답고 건강하고 눈부신 피부를 소유할수 있습니다.

피부에 가장 친화적인 성분은 자연에서 나온다고 전문가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력대로 임금의 수라에는 당대 최고의 료리비법이 망라돼 있고 황후의 화장대에는 당대 최고의 미용비책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최근 적지않는 명품 화장품의 홍보를 보면 궁중밀방을 참조했다는 광고어를 흔히 볼수 있지요. , 그럼 오늘 이시간에는 시대를 대표하는 여러 궁중녀인들의 미용비책을 소개해드리려합니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녀성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는 동서고금, 신분고하를 초월합니다. 한 나라 황후의 미용법에는 그 시대 최고의 미용비법이 담겨 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오늘날 화장품개발자들이 고대 왕실의 천연미용비법에 주목하는 리유는 바로 이때문입니다. 현재 문서로 남아있는 제일 오래된 궁중미용비법은 남조시기의 황비 장려화의 기록입니다. 장려화는 머리카락 길이가 칠척이며 그 머리카락이 하도 윤기 돌아 거울로 삼아 비춰볼만한절세가인이였다고 전해졌는데요, 특히 그녀의 옥처럼 맑고 투명한 피부에는 특별한 비결이 있다고 합니다. 먼저 생닭알에 작은 구멍을 내고 노란자위는 빼버리고 흰자위만 남긴 뒤 주사가루를 넣고 구멍을 막습니다. 이 닭알을 숙성시키면 크림과 같은 질감을 띠게 되는데요, 장려화는 줄곧 이것을 천연미백제로 사용했답니다.

중국력사상 유명한 녀성권력자중의 하나인 려황후의 미용비결은 매일 아침 챙겨먹는 흰 참나무버섯죽에 있었답니다. 버섯의 일종인 흰흐르레기버섯은 뼈와 관절을 튼튼하게 하는 교질성분이 풍부해 장기복용하면 피부를 윤택하게 하며 주근깨 등 잡티도 없애줍니다. 흰흐르레기버섯을 끓인 물은 지금도 훌륭한 천연보습제로 쓰이고 있습니다.

중국 고대 일등 미녀로 손꼽히는 양귀비는 수많은 피부미용법을 꿰고 있었는데요,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양태진홍옥고라는 처방입니다. 양귀비는 매일 아침 세안후 이를 얼굴에 바른채 전신욕을 했는데 그 비방에는 주요 약재로 피부를 윤택하게 하는 살구씨가 함유돼 있었습니다.

또 무측천은 중국 최초의 녀황제로 81세까지 충치 하나 없이 새하얀 치아와 젊은 얼굴을 유지했다고 알려져 있었지요. 그녀의 동안피부 유지 비결은 익모초였다고 합니다. 익모초는 혈액순환에 좋은 풀로서 미백 및 주름제거, 부인과 질환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 당나라 의서 <신수본초>에는 무측천이 익모초를 리용한 미용법이 다음과 같이 수록돼 있습니다. 먼저 해볕에 말려 가루를 낸 익모초에 밀가루와 물을 넣어 골고루 저은 다음 닭알크기로 다져 해볕에 다시 말립니다. 딱딱하게 굳은 익모초덩어리를 센 불에 10분간 구운 뒤 약한 불에서 하루밤 굽습니다. 이튿날 구운 익모초덩어리를 가루로 빻아 적당량의 활석분과 연지를 넣어 목욕할때나 세수할때 사용하면 잡티없이 맑고 깨끗한 도자기 피부를 만들어줍니다. 이 가루를 신선옥녀분이라고 부릅니다.

, 궁중미녀들의 미용비책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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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인생 오늘 프로 여기서 마칩니다. 프로 편집과 취재에 최춘매, 진행에 _____였습니다. 여러분 즐거운 명절을 보내시고요, 다음주 이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