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

박옥혼금(璞玉渾金) 박옥(璞玉)은 갈고 닦지 않은 옥, 혼금(渾金)은 아직 제련하지
                               않은 금. 곧 검소하고 질박한 사람을 칭찬하는 말로 쓰인다.
박이부정(博而不精) 여러 방면으로 널리 아나 정통하지 못함.
박장대소(拍掌大笑) 손뼉을 치면서 크게 웃음.
박학상설(博學詳說) 博學은 '여러가지를 배워 많이[博] 안다'로 博識과 같다.
                               詳說은 '자세히 설명하다[說]'이니, 博學詳說은 '널리 배우고, 상세하게 해설한다'는 말이다.
《盟子》의 '博學而詳說之 將以反說約也'(여러 학문을 배우고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장차 반대로 간단 명료함을 설명키 위해서다)에서 나온 成語다. '……詳說之'의 '之'는 詳說의 목적어로 앞의 博學을 나타낸다. '反'은 (앞에 서술한 내용에 대해) '오히려' '도리어' '반대로'라는 뜻으로 쓰이며, 說約은 '요점을 추려 간략히 하다'는 의미다. 배우고 연구하는 것은 博學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진리를 얻어 생활에 활용키 위해서다. 인류문명은 간단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갔다가, 다시 복잡한 것에서 간단한 것으로 되돌아 간다. 그러니까 博學은 說約의 과정인 셈이다.
반계곡경(盤溪曲徑) 소반같이 좁은 시내와 꾸불꾸불한 지름길. 정당한 방법을 취
                               하지 않고 옳지 않은 수단을 써서 억지로 일을 한다는 뜻이다.

반근착절(槃根錯節) 구부러진 뿌리 뒤틀린 마디 세력이 뿌리가 깊어 제거하기
                               어렵다.
[출전]《後漢書》〈虞?傳〉 서린 뿌리와 얼크러진 마디라는 뜻으로, 얼크러져 해결하기 매우 어려운 사건의 비유. 후한(後漢) 6대 황제인 안제(安帝: 106∼125)때의 일이다. 안제가 13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모후(母后)인 태후(太后)가 수렴 청정(垂簾聽政)을 하고 태후의 오빠인 등즐(鄧?)이 대장군이 되어 병권을 장악했다. 그 무렵, 서북 변경은 티베트계(系) 유목 민족인 강족(羌族)의 침략이 잦았다. 그러나 등즐은 국비 부족을 이유로 양주(凉州:감숙성)를 포기하려고 했다. 그러나 낭중(郎中) 벼슬에 있는 우허(虞?)가 반대하고 나섰다. "함곡관(函谷關)의 서쪽은 장군을 내고 동쪽은 재상을 낸다고 했습니다. 예로부터 양주는 많은 열사와 무인을 배출한 곳인데 그런 땅을 강족에게 내준다는 것은 당치 않은 일입니다." 중신들도 모두 우허와 뜻을 같이했다. 이 때부터 우허를 미워하는 등즐은 때마침 조가현(朝歌縣:안휘성 내)의 현령이 비적(匪賊)에게 살해되자 우허를 후임으로 정하고 비적 토벌을 명했다. 친구들이 모여 걱정했으나 우허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서린 뿌리와 얼크러진 마디[盤根錯節]'에 부딪쳐 보지 않고서야 어찌 칼날의 예리함을 알 수 있겠는가." 현지에 도착한 우허는 우선 전과자들을 모아 적진에 침투시킨 다음 갖가지 계책으로 비적을 토벌했다고 한다.
반면지분(半面之分) 얼굴을 반만 아는 사이. 서로 알아는 보지만 친하게 지내지는
                               않는 사이
반면지식(半面之識) 얼굴을 반만 아는 사이. 서로 알아는 보지만 친하게 지내지는
                               않는 사이
반목질시(反目嫉視) 눈을 흘기며 미워함(白眼視).
반문농부(班門弄斧) 자기의 실력을 생각지 않고 당치않게 덤비는 것을 말한다.
반식재상(伴食宰相) 재능이 없으면서 유능한 재상 옆에서 정사를 처리하는
                               사람.
[동의어] 반식대신(伴食大臣). [유사어] 시위소찬(尸位素餐). 녹도인(祿盜人). 의관지도(衣冠之盜) [출전]《舊唐書》〈盧懷愼傳〉당나라 6대 황제인 현종(玄宗)을 도와 당대 최성기(唐代最盛期)인 '개원(開元)의 치(治)'를 연 재상은 요숭(姚崇)이었다. 개원 2년(713), 현종이 망국의 근원인 사치를 추방하기 위해 문무 백관의 호사스런 비단 관복을 정전(正殿) 앞에 쌓아 놓고 불사른 일을 비롯, 조세와 부역을 감하여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고, 형벌 제도를 바로잡아 억울한 죄인을 없애고, 농병(農兵) 제도를 모병(募兵) 제도로 고친 것도 모두 요숭의 진언에 따른 개혁이었다. 이처럼 요숭은 백성들의 안녕을 꾀하는 일이 곧 나라 번영의 지름길이라 믿고 늘 이 원칙을 관철하는 데 힘썼다. 특히 정무재결(政務裁決)에 있어서의 신속 적확(迅速的確)함에는 그 어느 재상(宰相:大臣)도 요숭을 따르지 못했는데 당시 황문감(黃門監:환관 감독부서의 으뜸 벼슬)인 노회신(盧懷愼)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회신은 청렴 결백하고 근면한 사람이었으나 휴가중인 요숭의 직무를 10여일간 대행할 때 요숭처럼 신속히 재결하지 못함으로 해서 정무를 크게 정체시키고 말았다. 이 때 자신이 요숭에게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체험한 노회신은 매사를 요숭에게 상의한 다음에야 처리하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회신을 가리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무능한 재상[伴食宰相]'이라고 냉평(冷評)했다.  
반포지효(反哺之孝) 까마귀 새끼가 자라서 그 어버이에게 먹이를 먹여주는 일,
                               식이 커서 어버이의 은혜에 보답하는 효성.
발문망식(發憤忘食) 한 가지 일을 성취하기 위해 밥생각도 잊고 바삐 돌아다님.
발본색원(拔本塞源) 폐단의 근원을 아주 뽑아 버려 다시 고치려는 것.《出典》'春秋左氏傳' 昭公 九年條 발본색원(拔本塞源)은 '春秋左氏傳' 昭公 九年條 중, 주왕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유래된 故事이다. "나에게 백부(伯父)가 계신 것은 마치 옷에 갓이 있는 것과 같다. 나무와 물에 근원이 있어야 하듯 백셩들에게 지혜로운 임금이 있어야 한다. 백부께서 만약 갓을 찢어버리고 뿌리를 뽑고 근원을 막으며[拔本塞源], 오로지 지혜로움을 버린다면 비록 오랑캐들이라도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볼 것인가."'春秋左氏傳' 昭公 九年條에 실린, 윗글의 원문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나에게 큰아버지가 계신 것은, 마치 의복에 갓과 면류관이 있고, 나무와 물에 근원이 있고, 백성들에게 지혜로운 임금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큰아버지께서 만일 갓을 짜개고 면류관을 부수고, 근본을 뽑아 근원을 틀어막고[拔本塞源], 오로지 지혜로운 임금을 버리신다면, 비록 오랑캐라 할지라도 그 남음이 어찌 한 사람에 있으리오. 我在伯父 猶衣服之有冠冕 木水之有本源 民人之有謀主 伯父若裂冠毁冕 拔本塞源 專棄謀主 雖戎狄其何有餘一人.. 이와는 다른 出典으로, 명나라 때의 철학자 왕양명(王陽明)의 '발본색원론(拔本塞源論)'이 있다. 왕양명의 '발본색원론(拔本塞源論)'을 여기 다 소개할 수는 없으나, 그가 평소 제창하던 "하늘의 이치를 지니고 사람들은 욕심을 버리라."는 말과 취지가 같다. 즉, 사사로운 탐욕은 근본부터 뽑아버리고 그 근원을 틀어막음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정신적인 고사가 지금 세상에서는 범죄나 범죄 조직의 뿌리를 뽑아버린다는 데에만 사용되고 있으니 이는 통탄할 일인가, 아니면 언어의 사회성에 대한 금석지감이라 할 일인가?
발산개세(拔山蓋世) 힘은 산을 뽑고 기세는 세상을 덮음. (力拔山氣蓋世)
                               
항우(項羽)의 힘을 비유. 힘은 산을 뽑을 만큼 매우 세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만큼 웅대함을 이르는 말. 《사기》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오는 말로, 항우가 가이샤(垓下)에서 한(漢)나라 군사에게 포위되었을 때 적군들이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고 읊었다는 시의 한 구절이다. = 발산개세
발췌초록(拔萃抄錄) 여럿 속에서 뛰어난 것을 뽑아 간단히 적어둔 것
발호(跋扈) 제 멋대로 날뛰다. 제 마음대로 날뛰며 행동하는 것.
발호장군(跋扈將軍) 폭풍을 의미한다.
방약무인(傍若無人)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 처럼 남을 신경쓰지 않는다. 즉, 언행이
                               방자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또는 그러한 사람을 말한다.

                             
  [출전]《史記》〈刺客列傳〉 곁에 사람이 없는 것 같이 여긴다는 뜻으로, 주위의 다른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제멋대로 마구 행동함을 이르는 말. 전국 시대도 거의 막을 내릴 무렵, 즉 진왕(秦王) 정(政:훗날의 시황제)이 천하를 통일하기 직전의 일이다. 당시 포학 무도한 진왕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자객 중에 형가(荊軻)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위(衛)나라 사람이었으나 위나라 원군(元君)이 써주지 않자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가 연(燕)나라에서 축(筑:거문고와 비슷한 악기)의 명수인 고점리(高漸離)를 만났다. 형가와 고점리는 곧 의기투합(意氣投合)하여 매일 저자에서 술을 마셨다. 취기가 돌면 고점리는 축을 연주하고 형가는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가 감회가 복받치면 함께 엉엉 울었다. 마치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傍若無人]'…….
방장부절(方長不折) 한창 자라는 나무는 꺾지 않는다. 앞길이 창창한 사람을 박해
                               하지 말라, 혹은 잘 되어 가는 일을 방해하지 말라는 의미.

방휼지쟁(蚌鷸之爭) 조개와 황새가 서로 싸우다가 어부에게 붙잡혔다는 우화. 두
                               사람이 이익을 위하여 싸우다가 제삼자에게 빼앗기는 것을
                               풍자한 말이다.(-漁父之利)
배반랑자(杯盤狼藉) 술잔과 접시가 마치 이리에게 깔렸던 풀처럼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는 뜻. 곧 ① 술을 마시고 한창 노는 모양.
                               ② 술자리가 파할 무렵 또는 파한 뒤 술잔과 접시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모양.
                           
    [출전]《史記》〈滑稽列傳(골계열전)〉 전국 시대 초엽, 제(齊)나라 위왕(威王) 때의 일이다. 초(楚)나라의 침략을 받은 위왕은 언변이 좋은 순우곤(淳于?)을 조(趙)나라에 보내어 원군을 청했다. 이윽고 순우곤이 10만의 원군을 이끌고 돌아오자 초나라 군사는 밤의 어둠을 타서 철수하고 말았다. 전화(戰禍)를 모면한 위왕은 크게 기뻐했다. 이어 주연을 베풀고 순우곤을 치하하며 환담했다. "그대는 얼마나 마시면 취하는고?" "신(臣)은 한 되[升]를 마셔도 취하옵고 한 말[斗]을 마셔도 취하나이다." "허, 한 되를 마셔도 취하는 사람이 어찌 한 말을 마실 수 있단 말인고?" "예, 경우에 따라 주량이 달라진다는 뜻이옵니다. 만약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마신다면 두려워서 한 되도 못 마시고 취할 것이오며, 또한 근엄한 친척 어른들을 모시고 마신다면 자주 일어서서 술잔을 올려야 하므로 두 되도 못 마시고 취할 것이옵니다. 옛 벗을 만나 회포를 풀면서 마신다면 그땐 대여섯 되쯤 마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하오나 동네 남녀들과 어울려 쌍륙(雙六:주사위 놀이)이나 투호(投壺:화살을 던져 병 속에 넣는 놀이)를 하면서 마신다면 그땐 여덟 되쯤 마시면 취기가 두서너 번 돌 것이옵니다. 그리고 해가 지고 나서 취흥이 일면 남녀가 무릎을 맞대고 신발이 뒤섞이며 '술잔과 접시가 마치 이리에게 깔렸던 풀처럼 어지럽게 흩어지고[杯盤狼藉]' 집 안에 등불이 꺼질 무렵 안주인이 손님들을 돌려보낸 뒤 신(臣) 곁에서 엷은 속적삼의 옷깃을 헤칠 때 색정적(色情的)인 향내가 감돈다면 그땐 한 말이라도 마실 것이옵니다." 이어 순우곤은 주색을 좋아하는 위왕에게 이렇게 간했다. "전하, 술이 극에 달하면 어지러워지고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픈 일이 생긴다[樂極湟生]'고 하였사오니 깊이 통촉하시오소서." 위왕은 그후 술을 마실 때에는 반드시 순우곤을 옆에 앉혀 놓고 마셨다고 한다.
배수지진(背水之陳) 위험을 무릅쓰고 전력을 다하는 경우의 비유. 《出典》'史記' 淮
                                       陰侯列傳 / '十八史略' 한나라 고조 유방(劉邦)이 제위(帝位)에 오르기 2년 전(BC 204)의 일이다. 명장 한신(韓信)은 유방의 명에 따라 위(魏)나라를 쳐부순 다음 조(趙)나라로 쳐들어갔다. 그러자 조나라에서는 20만의 군사를 동원하여 조나라로 들어오는 길목인 정형(井?)의 협도(狹道) 출구 쪽에 성채(城砦)를 구축하고 방어선을 폈다. 이에 앞서 군략가인 아좌거(李左車)가 재상 진여(陳餘)에게 '한나라 군사가 협도를 통과할 때 들이치자'고 건의했으나 채택되지 않았는데, 첩자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한신은 서둘러 협도를 통과하다가 출구를 10리쯤 앞둔 곳에서 일단 행군을 멈췄다. 이윽고 밤이 깊어지자 한신은 2,000여 기병을 조나라의 성채 바로 뒷산에 매복시키기로 하고 매복 임무를 맡은 장수에게 이렇게 명했다. "본대(本隊)는 내일 싸움에서 거짓 패주(敗走)할 것이다. 그 때 제군들은 적이 비운 성채를 점령한 뒤 한나라 깃발을 세우도록 하라."
그리고 한신은 1만여 군사를 협도 출구 쪽으로 보내어 '강을 등지고 진을 치게[背水之陣]' 한 다음 자신은 본대를 이끌고 성채를 향해 나아갔다. 이윽고 날이 밝았다. 한나라 군사가 북을 울리며 진격하자 조나라 군사는 성채를 나와 응전했다. 2-3차 접전 끝에 한나라 군사는 퇴각하여 강가에 진을 친 부대에 합류했고, 승세(勝勢)를 탄 조나라 군사는 맹렬히 추격해 왔다. 한편 이러한 틈에 매복하고 있던 2,000여 한나라 기병대는 성채를 점령하고 한나라 깃발을 세웠다. 강을 등지고 진을 친 한나라 군사는 물러나지도 못하는 상황인지라 필사적으로 대항하여 싸웠다. 이에 견디지 못한 조나라 군사가 성채로 돌아와 보니, 한나라 깃발이 나부끼고 있지 않는가. 당연히 전쟁은 한신의 대승리로 끝났다. 전승 축하연 때 부하 장수들이 배수진(背水陣)을 친 이유를 묻자 한신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군사는 이번에 급히 편성한 오합지졸(烏合之卒)이 아닌가? 이런 군사는 사지(死地)에 두어야만 필사적으로 싸우는 법이다. 그래서 '강을 등지고 진을 친 것[背水之陣]'이다." 【동의어】배수진(背水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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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은망덕(背恩忘德) 남한테 입은 은덕을 잊고 저버림. 은혜를 모름.
배중사영(杯中蛇影) 술잔 속에 비친 뱀의 그림자란 뜻으로, 쓸데없는 의심을
                               품고 스스로 고민함의 비유.  [유사어] 의심암귀(疑心暗鬼), 반신반의(半信半疑).
[출전]《晉書》〈樂廣傳〉,《風俗通義》 진(晉:265∼316) 나라에 악광(樂廣)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집이 가난하여 독학을 했지만 영리하고 신중해서 늘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며 자랐다. 훗날 수재(秀才)로 천거되어 벼슬길에 나아가서도 역시 매사에 신중했다. 악광이 하남 태수(河南太守)로 있을 때의 일이다. 자주 놀러 오던 친구가 웬일인지 발을 딱 끊고 찾아오지 않았다. 악광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를 찾아가 물어 보았다. "아니, 자네 웬일인가? 요샌 통 얼굴도 안 비치니……." 그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번에 우리가 술을 마실 때 얘길세. 그때 술을 막 마시려는데 잔 속에 뱀이 보이는 게 아니겠나. 기분이 언짢았지만 그냥 마셨지. 그런데 그 후로 몸이 좋지 않다네." 악광은 이상한 일도 다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번 술자리는 관가(官家)의 자기 방이었고, 그 방 벽에는 활이 걸려 있었지? 그렇다. 그 활에는 옻칠로 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안광은 그 친구를 다시 초대해서 저번에 앉았던 그 자리에 앉히고 술잔에 술을 따랐다. "어떤가? 뭐가 보이나?" "응, 전번과 마찬가지네." "그건 저 활에 그려져 있는 뱀 그림자일세." 그 친구는 그제서야 깨닫고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백골난망(白骨難忘) 백골이 되어도 잊기 어려움. 죽어도 잊지 못할 큰 은혜를 입
                               음을 뜻한다.

백구과극(白駒過?) 白駒之過 (백구지과극) '흰 망아지가 빨리 달리는 것을 문틈
                             으로 본다'는 뜻으로, 세월이 빠르다.
《出典》'莊子' 知北遊篇 / '史記' 인생이 지나가는 것의 빠르기가, 문틈으로 흰 말이 지나가는 것을 봄과 같다는 말이다.
《莊子》'知北遊篇'에 다음과 같은 것이 실려 있다.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는 것은, '흰 말이 달려 지나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白駒之過隙]'처럼 순간일 뿐이다. 모든 사물들은 물이 솟아나듯이 문득 생겨났다가 물이 흐르듯 아득하게 사라져가는 것이다. 변화로써 태어났다가 또한 변화로써 죽을 뿐이다. 생물들은 이를 슬퍼하고, 사람들도 이를 슬퍼한다. 죽음이란 화살이 살통을 빠져나가고, 칼이 칼집을 빠져나감과 같이 혼백이 육신에서 빠져나가고 이에 몸이 따라 무(無)로 돌아가는 것을 말함이니, 이야말로 위대한 복귀(復歸)가 아닌가! 사람이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이처럼 허무한 일이다.
《史記》'유후세가(留侯世家)'에는 여태후(呂太后)가 유후(留侯)에 대하여 한 말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인생의 한 세상 사이는 '흰 말이 틈을 지나가는 것[白駒過隙]'과 같다. 어찌 스스로 괴로워하기가 이와 같음에 이르겠는가? 人生一世間 如白駒過隙 何至自若如此乎.

백년하청(百年河淸) 중국의 황하(黃河)가 항상 흐려 맑을 때가 없다는 데서
                               나온 말로, 아무리 바라고 기다려도 실현될 가능성이 없음을
                               이르는 말. 《
出典》'春秋左氏傳' 정(鄭)나라가 초(楚)나라의 속국 격인 채(蔡)나라를 공격하자 초나라도 정나라를 공격할 채비를 하게 되었다. 이에 정나라에서는 대책을 숙의하는 회의를 열게 되었다. 회의는 진(晉)나라에 구원병을 청하자는 측과 초나라와 강화(講和)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이 때 자사(子駟)가 말하기를, "주(周)나라의 시(詩)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황하의 물이 맑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사람 수명으로는 맞지 않다. 여러 가지를 놓고 점을 치면 그물에 얽힌 듯 갈피를 못 잡는다.(周詩有之曰 待河之淸 人壽幾何非云詢多 職競作羅)』그러니 우선 초나라와 강화를 해서 백성들을 위험에서 구하고 그 다음에 진나라를 따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 말은 진나라의 구원병을 기다리는 것은 황하의 맑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즉, "황하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晉나라의 구원병이 올 것이 어긋난다는 비유로 쓴 말로,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 대처하는 괴로운 마음이 잘 나타나 있는 이야기라 하겠다. 그 후 정나라는 자사(子駟)의 말대로 해서 위기를 면했다.[동의어] 천년하청(千年河淸).[유사어]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
백년해로(百年偕老) 부부가 되어 화락하게 일생을 함께 늙음. 백년 동안 함께 늙음
백두여신(白頭如新) 머리가 희게 될 때까지 오랫동안 사귀어도 서로 상대방의 재
                               능을 이해하지 못하면 새로 사귄 벗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백락일고(伯樂一顧) 아무도 쉽게 천리마임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백락(伯樂)은 천
                               리마(千里馬)를 한 눈에 알아보던 고사에서 비롯된 말. 남이
                               자기 재능을 알고 잘 대우함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백면서생(白面書生) 글만 읽어 세상 일에 경험이 없는 사람.
                               
[출전]《宋書》〈沈慶之傳〉남북조(南北朝) 시대, 남조인 송(宋)나라 3대 황제인 문제(文帝:424∼453) 때 오(吳:절강성) 땅에 심경지(沈慶之)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힘써 무예를 닦아 그 기량이 뛰어났다. 전(前)왕조인 동진(東晉:317∼420)의 유신(遺臣) 손은(孫恩) 장군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는 불과 10세의 어린 나이로 일단(一團)의 사병(私兵)을 이끌고 반란군과 싸워 번번이 승리하여 무명(武名)을 떨쳤다. 그의 나이 40세 때 이민족(異民族)의 반란을 진압한 공로로 장군에 임명되었다. 문제에 이어 즉위한 효무제(孝武帝:453∼464) 때는 도읍인 건강(建康:南京)을 지키는 방위 책임자로 승진했다. 그 후 또 많은 공을 세워 건무장군(建武將軍)에 임명되어 변경 수비군의 총수(總帥)로 부임했다. 어느 날 효무제는 심경지가 배석한 자리에 문신들을 불러 놓고 숙적인 북위(北魏:386∼534)를 치기 위한 출병을 논의했다. 먼저 심경지는 북벌(北伐) 실패의 전례를 들어 출병을 반대하고 이렇게 말했다. "폐하, 밭갈이는 농부에게 맡기고 바느질은 아낙에게 맡겨야 하옵니다. 하온데 폐하께서는 어찌 북벌 출병을 '백면서생'과 논의하려 하시나이까?" 그러나 효무제는 심경지의 의견을 듣지 않고 문신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출병했다가 크게 패하고 말았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뜻으로,
                                            무엇이든지 경험해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말.                        
                    [출전]《漢書》〈趙充國傳〉 전한(前漢) 9대 황제인 선제(宣帝:B.C. 74∼49) 때의 일이다. 서북 변방에 사는 티베트계(系) 유목 민족인 강족(羌族)이 쳐들어왔다. 한나라 군사는 필사적으로 응전했으나 크게 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선제는 어사대부(御史大夫:검찰총장)인 병길(丙吉)에게 후장군(後將軍) 조충국(趙充國)을 찾아가 토벌군의 장수로 누가 적임자인지 물어 보라고 명했다. 당시 조충국은 나이 70이 넘은 노장(老將)이었다. 그는 일찍이 7대 황제인 무제(武帝:B.C. 141∼87) 때 이사장군(貳師將軍) 이광리(李廣利)의 휘하 장수로 흉노 토벌에 출전했다가 포위되자 불과 100여 명의 군사로써 혈전(血戰) 끝에 포위망을 뚫고 전군을 구출했다. 그 공으로 거기 장군(車騎將軍)에 임명된 그는 이때부터 오랑캐 토벌전의 선봉장이 되었던 것이다. 조충국을 찾아온 병길은 이렇게 말했다. "강족을 치는데 누가 적임자인지, 장군에게 물어 보랍시는 어명을 받고 왔소이다." 그러자 조충국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어디 노신(老臣)을 능가할 사람이 있겠소?" 선제는 조충국을 불러 강족 토벌에 대해 물었다. "강족을 토벌하는데 계책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 또 병력은 얼마나 필요하오?" 조충국은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옵니다[百聞不如一見].' 무릇 군사(軍事)란 실지를 보지 않고는 헤아리기 어려운 법이오니 원컨대 신을 금성군[金城郡:감숙성 난주(甘肅省蘭州) 부근]으로 보내 주시 오소서. 계책은 현지를 살펴 본 다음에 아뢰겠나이다." 선제는 기꺼이 윤허했다. 현지 조사를 마치고 돌아온 조충국은 기병(騎兵)보다 둔전병(屯田兵)을 두는 것이 상책이라고 상주했다. 그 후 이 계책이 채택됨으로써 강족의 반란도 수그러졌다고 한다. [주] 둔전병 : 변경(邊境)에 주둔(駐屯)ㅗ토착(土着)시켜 평상시에는 농사도 짓게 하던 군사.
백미(白眉) 많은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 《出典》'三國志' 馬良傳 유비(劉備)는 적벽대전 후
                       형주(荊州), 양양(襄襄), 남군(南郡)을 얻고 군신(群臣)을 모아서 앞으로의 계책을 물었다. 이때 유비를 두 번이나 구하여 준 이적(伊籍)이, "새로 얻은 땅들을 오래 지키려면, 먼저 어진 선비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유비가 이적(伊籍)에게 물었다. "어진 선비가 누구요?" "형양(荊襄) 땅 마량(馬良)의 다섯 형제가 모두들 재명(才名)이 있는데, 가장 어진 이는 양눈썹 사이에 흰 털이 난 '양(良)'으로 자(字)는 계상(季常)이라고 합니다. 또 향리(鄕里)에서도 '마씨집 오상(五常)이 모두 뛰어나지만 그 중에서도 백미(白眉)가 있는 마량(馬良)이 제일 뛰어나다.(馬氏五常 白眉最良)'고 합니다. 공(公)께서는 어찌 청하여 오지 않으십니까?" 유비는 즉시 마량(馬良)을 청하여 오게 했다.

백발백중(百發百中) 일어나 계획하던 바가 생각대로 들어맞다.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  흰 머리털의 길이가 삼천 길[?]이란 뜻으로, 중국
                                       문학의 과장적 표현으로 널리 인용되는 문구.
                                       '백발 삼천장'이란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시〈추포가(秋浦歌)〉17수 중 한 수인 오언절구(五言絶句)에서 나온 말이다.
[출전] 이백(李白)의 시〈秋浦歌〉
흰 머리털이 (자라 어느새) 삼천 길 [白髮三千丈(백발삼천장)]
근심으로 인하여 이처럼 길어졌네 [緣愁似箇長(연수사개장)]
알지 못해라 밝은 거울 속 [不知明鏡裏(부지명경리)]
어디서 가을 서리를 얻었는고 [何處得秋霜(하처득추상)]
이 시는 만년에 귀양에서 풀려난 이백이 추포(秋浦:안휘성 내)에 와서 거울을 보고 이미 늙어버린 자기 모습에 놀라서 지은 연작(連作) 중 한 수이다. 이 유명한 '백발의 길이가 삼천 길'이란 표현은 중국 문항의 과장적 표현으로 널리 인용되는 문구인데 요즈음에는 '과장된 것을 비웃는 말'로 흔히 쓰이고 있다.
백세지사(百世之師) 백세 후에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될만큼 훌륭한 사
                               람을 일컬음.
백대 후에까지도 우러러 본받을 만한 스승.
백수북면(白首北面) 재주와 덕이 없는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스승 앞에서 북향(
                               北向)하고 앉아 가르침을 바란다는 뜻.

백아절현(伯牙絶鉉) 자기를 알아 주는 참다운 벗의 죽음을 슬퍼함을 이름.
                             (백아와 종자기)
《出典》'列子' 湯問篇 / '荀子' 勸學篇 춘추 시대, 거문고의 명수로 이름 높은 백아(伯牙)에게는 그 소리를 누구보다 잘 감상해 주는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있었다. 백아가 거문고를 타며 높은 산과 큰 강의 분위기를 그려 내려고 시도하면 옆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종자기의 잎에서는 탄성이 연발한다. "아, 멋지다. 하늘 높이 우뚝 궨는 그 느낌은 마치 태산(泰山)같군" "응, 훌륭해, 넘칠 듯이 흘러 가는 그 느낌은 마치 황하(黃河)같군"
두 사람은 그토록 마음이 통하는 연주자였고 청취자였으나 불행히도 종자기는 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러자 백아는 절망한 나머지 거문고의 줄을 끊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기(知己)를 가리커 지음(知音)이라고 일컫는 것은 이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순자(荀子)》'勸學篇'에, 『옛날에 호파가 비파를 타면 물 속에 있던 물고기가 나와 들었고, 백아(伯牙)가 거문고를 타면 여섯 필의 말이 풀을 뜯다가 고개를 들어 쳐다 보았다. 그러므로 소리는 작더라도 들리지 않는 것이 없고 행동은 숨기어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 없다. 옥이 산에 있으면 풀과 나무가 윤택하고, 연못에 진주가 생기면 언덕이 마르지 않는다. 善을 행하고 惡을 쌓지 않는다면 어찌 명성이 들리지 않겠는가?』
그 후부터 친한 벗이 죽었을 때 <백아절현(伯牙絶鉉)>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동의어】백아파금(伯牙破琴) 【유사어】지음(知音), 고산유수(高山流水)

백안시(白眼視) 남을 나쁘게 여기거나 냉대하여 흘겨보다.
                         [유사어] 백안(白眼). [반의어] 청안시(靑眼視).
                        
 [출전]《晉書》〈阮籍傳〉 위진 시대(魏晉時代 : 3세기 후반)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노장(老莊)의 철학에 심취하여 대나무숲 속에 은거하던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에 완적(阮籍)이 있었다. 그는 예의 범절에 얽매인 지식인을 보면 속물이라 하여 '백안시'했다고 한다. 어느 날 역시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혜강(?康)의 형 혜희(?喜)가 완적이 좋아하는 술과 거문고를 가지고 찾아왔다. 그러나 완적이 업신여기며 상대해 주지 않자 혜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도망가듯 돌아갔다. 이처럼 상대가 친구의 형일지라도 완적은 그가 속세의 지식인인 이상 청안시(靑眼視)하지 않고 '백안시'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조야(朝野)의 지식인들은 완적을 마치 원수를 대하듯 몹시 미워했다고 한다.  
백의(白衣) 관직이 없는 사람.
백의종군(白衣從軍) 벼슬이 없이 군대 일에 복무함.
백전백승(百戰百勝) 싸우는 때마다 모조리 이김.
                  
             [동의어] 연전연승(連戰連勝). [유사어] 백발백중(百發百中). [반의어] 백전백패(百戰百敗). [출전]《孫子》〈謀攻篇〉 백 번 싸워 백 번 이긴다는 뜻으로, 싸울 때마다 반드시 이긴다는 말. 춘추 시대, 제(齊)나라 사람으로서 오왕(吳王) 합려(闔閭:B.C. 514∼496)를 섬긴 병법가 손자(孫子:孫武)가 쓴《손자》〈모공편(謀攻篇)〉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승리에는 두 종류가 있다. 적을 공격하지 않고서 얻는 승리와 적을 공격한 끝에 얻는 승리인데 전자는 최상책(最上策)이고 후자는 차선책(次善策)이다. '백 번 싸워 백 번 이겼다[百戰百勝]'해도 그것은 최상의 승리가 아니다. 싸우지 않고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승리인 것이다.곧, 최상책은 적이 꾀하는 바를 간파하고 이를 봉쇄하는 것이다. 그 다음 상책은 적의 동맹 관계를 끊고 적을 고립시키는 것이고, 세 번째로 적과 싸우는 것이며, 최하책은 모든 수단을 다 쓴 끝에 강행하는 공성(攻城)이다." [주] 여기서 '백(百)'이란 단순과 숫자상의 '100'이 아니라 '삼(三)' '구(九)' '천(千)' '만(萬)'등과 마찬가지로 '많은 횟수'를 가리키는 것임.
백절불굴(百折不屈) 여러 번 꺾여도 굽히지 않음.
백주지조(栢舟之操) 공백(共伯)의 아내가 공강(共姜)이 백주(栢舟)라는 시를 지어
                               맹세하고 절개를 지킨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詩經} [栢舟])
                               남편이 일찍 죽은 아내가 절개를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백중지세(伯仲之勢) 우열을 가릴 수 없이 비슷하다. 《出典》魏 文帝의 典論 같은 부모의
                                       형과 누님을 백부와 백모라 하고, 동생과 누이동생을 숙부와 숙모라고 부 르는 것은, 옛날부터의 중국의 관습에 따른 것이다. 중국에서는 형제의 순서를 다시 세분하여, '伯 仲 叔 季'로 부르고 있다.
《禮記》'壇弓' 上篇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어려서 이름을 짓고, 관례(冠禮)를 하고서 자(字)를 붙이고, 50에 백중(伯仲)으로써 하고, 죽으면 시호(諡號)를 내리는 것은 주(周)나라의 도리이다.』
즉, 어린이가 태어나면 3개월만에 이름을 짓고, 20세가 되면 손님들을 초대하여 관(冠)을 씌우고, 자(字)를 짓는다. 50세가 되면 자(字) 위에 伯 仲 등 형제의 순서를 나타내고, 죽으면 諡號를 내린다. 이것이 周나라의 관습이었던 것이다.
<伯仲>이란 형제의 순서를 나타내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형제는 비슷하게 닮았기 때문에, 비교 평가하여도 서로 우열(優劣)을 가릴 수 없을 때, <그들은 伯仲之間이다>라고 한다.
그러나 <伯仲之間>이란 말을 처음에 쓴 것은, 魏나라의 文帝 조비(曹丕)였다. 文人들이 서로 가볍게 여기는 것은 옛날부터 그러했다. 부의(傅儀)와 반고(班固)에 있어서는 백중지간일 뿐이다. 文人相輕 自古而然 傅儀之於班固 伯仲之間耳. 《魏 文帝의 典論》

백중지간(伯仲之間) 서로 엇비슷하여 낫고 못함이 없는 사이.=백중지세(伯仲之勢).
백척간두(百尺竿頭) 백자 높이의 장대 끝. 몹시 높은 곳. 막다른 위험.
백팔번뇌(百八煩惱) 108가지의 번뇌. 눈· 귀· 입· 코· 몸· 뜻의 육관(六官)에 각각
                             苦· 樂· 不苦不樂이 있어 18가지가 되고, 거기에 貪·無貪이
                             있어 36가지가 되며, 이것을 각각 과거·현재·미래에 풀면
                             모두 108가지가 됨.
번문욕례(繁文縟禮) 번거롭게 형식만 차리어 몹시 까다로운 예문.
벌제위명(伐齊爲名) 실속은 없는 데도 명분만을 위해 제(齊)나라를 친다. 뭔가를
                               하는 척하지만 실상은 딴짓을 하고 있는 것을 일컬는 말로 쓰
                               인다.
법구폐생(法久弊生) 좋은 법도 오래 되면 폐해가 생김.
법삼장(法三章)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이 통일을 한 후 제정한 삼장(
                        三章)의 법률. 진(秦)나라의 가혹했던 법률을 모두 폐지해버리고, 살인, 상해, 절도에 대해서만 지극히 간략하게 삼장으로 제정하여 백성들이 모두 기뻐하였던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병입고황(病入膏 )병이 고황에까지 들었다. 고황(膏 )은 심장과 격막 사이의
                              부분. 신체 부위 중에서 고황에 병이 들면 침이나 약으로도 치료할 가망이 없었다 해서, 병이 위중하여 치료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고치기 어려운 오류(誤謬)에 비유하기도 한다.
보원이덕(報怨以德) 원수 갚기를 덕으로써 하라. (老子 [道德經])
보이국사(報以國士) 남을 국사로 대우하면 자기도 또한 국사로서 대접을 받는다.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의 은혜에 감동하는 말로 쓰인다.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 한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담지 못한다.
                               
      [동의어] 복배지수(覆杯之水), 복수불수(覆水不收). [유사어] 낙화불반지(落花不返枝), 파경부조(破鏡不照), 파경지탄(破鏡之歎). [출전]《拾遺記(습유기)》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다는 뜻. 곧 ① 한번 떠난 아내는 다시 돌아올 수 없음의 비유. ② 일단 저지른 일은 다시 되돌릴 수 없음의 비유. 주(周)나라 시조인 무왕(武王:發)의 아버지 서백(西伯:文王)이 사냥을 나갔다가 위수(渭水:황하의 큰 지류)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는 초라한 노인을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학식이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서백은 이 노인이야말로 아버지 태공(太公)이 '바라고 기다리던[待望]' 주나라를 일으켜 줄 마로 그 인물이라 믿고 스승이 되어 주기를 청했다. 이리하여 이 노인, 태공망(太公望:태공이 대망하던 인물이한 뜻) 여상[呂尙:성은 강(姜) 씨, 속칭 강태공]은 서백의 스승이 되었다가 무왕의 태부(太傅:태자의 스승)재상을 역임한 뒤 제(齊)나라의 제후로 봉해졌다. 태공망 여상은 이처럼 입신 출세했지만 서백을 만나기 전까지는 끼니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던 가난한 서생이었다. 그래서 결혼 초부터 굶기를 부자 밥 먹듯 하던 아내 마(馬)씨는 그만 친정으로 도망가고 말았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 마씨가 여상을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전엔 끼니를 잇지 못해 떠났지만 이젠 그런 걱정 안해도 될 것 같아 돌아왔어요." 그러자 여상은 잠자코 곁에 있는 물그릇을 들어 마당에 엎지른 다음 마씨에게 말했다. "저 물을 주워서 그릇에 담으시오." 그러나 이미 땅 속으로 스며든 물을 어찌 주워 담을 수 있단 말인가. 마씨는 진흙만 약간 주워 담았을 뿐이었다. 그러자 여상은 조용히 말했다.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고[覆水不返盆]' 한번 떠난 아내는 돌아올 수 없는 법이오."   
복재적선화재적악(福在積善禍在積惡) 복(福)의 근원은 선(善)을 쌓는 데 있고,
                                                         화(禍)의 근원은 악(惡)을 쌓는 데 있다.
복차지계(覆車之戒) 먼저 간 수레가 엎어졌음을 보고 경계함. 앞사람의 실패를 뒷
                               사람이 교훈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부기미(付驥尾) 명마의 꼬리에 붙으면 멀리 갈 수 있다.
부득요령(不得要領) 요령을 얻지 못하다.
부마(駙馬) 예비의 말, 임금의 사위. 공주의 부군(夫君).
                  
[원말] 부마도위(駙馬都尉). [출전]《搜神記(수신기)》 옛날 농서[?書:감숙성(甘肅省)] 땅에 신도탁(辛道度)이란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이름 높은 스승을 찾아 옹주(雍州)로 가던 도중 날이 저물자 어느 큰 기와집의 솟을대문을 두드렸다. 이윽고 하녀가 나와 대문을 열었다. "옹주로 가는 나그네인데 하룻밤 재워 줄 수 없겠습니까?" 하녀는 잠시 기다리라며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그를 안방으로 안내했다. 방 안에는 잘 차린 밥상이 있었는데 하녀가 사양 말고 먹으라고 한다. 식사가 끝나자 안주인이 들어왔다. "저는 진(秦)나라 민왕(閔王)의 딸이온데 조(曹)나라로 시집을 갔다가 남편과 사별을 하고 이제까지 23년 동안 혼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처럼 찾아 주셨으니 저와 부부의 인연을 맺어 주세요." 신도탁은 그런 고귀한 여인과 어찌 부부의 인연을 맺을 수 있겠느냐고 극구 사양했으나 여인의 끈질긴 간청에 못 이겨 사흘 낮 사흘 밤을 함께 지냈다. 다음날 아침에 여인은 슬픈 얼굴로 말했다. "좀더 함께 지내고 싶지만 사흘 밤이 한도예요. 이 이상 같이 있으면 화를 당하게 되지요. 그래서 헤어져야 하지만 제 진심을 보여 드릴 수 없는 게 슬프군요. 정표로 이거라도 받아 주세요." 여인은 신도탁에게 금베개[金枕]를 건네주고는 하녀에게 대문까지 배웅하라고 일렀다. 대문을 나선 신도탁이 뒤돌아보니 그 큰 기와집은 간데 없고 잡초만이 무성한 허허 벌판에 무덤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품속에 간직한 금베개는 그대로 있었다. 신도탁은 금베개를 팔아 음식을 사 먹었다. 그후 왕비가 금베개를 저잣거리에서 발견하고 관원을 시켜 조사해 본 결과 신도탁의 소행임이 드러났다. 왕비는 그를 잡아다가 경위를 알아본 다음 공주의 무덤을 파고 관을 열어 보니 다른 부장품(副葬品)은 다 있었으나 금베개만 없어졌다. 그리고 시체를 조사해 본 결과 정교(情交)한 흔적이 역력했다. 모든 사실이 신도탁의 이야기와 부합하자 왕비는 신도탁이야말로 내 사위라며 그에게 '부마도위(駙馬都尉)'하는 벼슬을 내리고 후대했다고 한다.
부중지어(釜中之魚) 장차 삶아질 것도 모르고 솥 안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부전자전(父傳子傳) 대대로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함.
부창부수(夫唱婦隨) 남편의 주장에 아내가 따름. 부부의 화합함.
부형청죄(負荊請罪) 형(荊)은 가시나무. 가시나무를 등에 지고 때려 주기를 바란다.
                               즉, 사죄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화뇌동(附和雷同) 그렇다고 여기고 따라가는 것이 뇌동과 같다. 뇌동(雷同)은
                               우뢰가 울리면 만물이 이에 응하여 울리는 것을 말한다. 그처럼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고,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생각해보지도 않고서 경솔하게 따라가는 것을 말한다.(=附和共鳴)
아무런 주관 없이 남이 하는 대로 덩달아 행동함.
북문지탄(北門之歎) 북문에서 한탄함. 북문(北門)은 궁궐의 상징어이다. 즉, 벼슬
                               자리에 나가기는 하였으나 뜻대로 성공하지 못하여 살림이 곤궁함을 한탄하는 말이다.
북산지감(北山之感) 북산에서 느끼는 감회. 북산(北山)은 궁궐의 상징어이다. 나라
                               일에 힘쓰느라고 부모봉양을 제대로 못한 것을 슬퍼하는 마
                               음을 말한다.
북창삼우(北窓三友) 거문고와 시와 술을 일컬음
분골쇄신(粉骨碎身) 뼈는 가루가 되고 몸은 산산조각이 날 정도로 목숨을
                             걸고 있는 힘을 다함.
분서갱유(焚書坑儒) 진시황이 모든 서적을 불태우고 많은 학자를 구덩이에 묻어
                             죽인 일.
《出典》'史記' 秦始皇紀 / '十八史略' 秦篇 기원전 221년, 제(齊)나라를 끝으로 6국을 평정하고 전국시대를 마감한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 때의 일이다. 시황제(始皇帝)는 천하를 통일하자 주(周)왕조 때의 봉건 제도를 폐지하고 사상 처음으로 중앙 집권(中央執權)의 군현제도(郡縣制度)를 채택했다. 군현제를 실시한 지 8년이 되는 그 해(BC 213) 어느날, 시황제가 베푼 함양궁(咸陽宮)의 잔치에서 박사(博士)인 순우월(淳于越)이 '현행 군현제도 하에서는 황실의 무궁한 안녕을 기하기가 어렵다'며 봉건제도로 개체(改體)할 것을 진언했다.
시황제가 신하들에게 순우월의 의견에 대해 가부(可否)를 묻자, 군현제의 입안자(立案者)인 승상 이사(李斯)는 이렇게 대답했다. "봉건시대에는 제후들 간에 침략전이 끊이지 않아 천하가 어지러웠으나 이제는 통일되어 안정을 찾았사오며, 법령도 모두 한 곳에서 발령(發令)되고 있나이다. 하오나 옛 책을 배운 사람들 중에는 그것만을 옳게 여겨 새로운 법령이나 정책에 대해서는 비난하는 선비들이 있사옵니다. 하오니 차제에 그러한 선비들을 엄단하심과 아울러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의약(醫藥) 복서(卜筮) 종수(種樹)에 관한 책과 진(秦)나라 역사책 외에는 모두 수거하여 불태워 없애 버리소서."
시황제가 이사(李斯)의 의견을 받아들임으로써 관청에 제출된 희귀한 책들이 속속 불태워졌는데, 이 일을 가리켜 '분서(焚書)'라고 한다.
이듬해(BC 212) 아방궁(阿房宮)이 완성되자 시황제는 불로장수의 신선술법(神仙術法)을 닦는 방사(方士)들을 불러들여 후대했다. 그들 중에서도 특히 노생(盧生)과 후생(侯生)을 신임했으나 두 방사(方士)는 많은 재물을 사취(詐取)한 뒤, 시황제의 부덕(不德)을 비난하며 종적을 감춰 버렸다. 시황제는 분노했다. 그런데 그 진노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시중(市中)의 염탐꾼을 감독하는 관리로부터 "페하를 비방하는 선비들을 잡아 가두어 놓았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시황제의 노여움은 극에 달했다. 엄중히 심문한 결과 연루자는 460명이나 되었다.
시황제는 자기를 비방한 460명의 유생(幼生)들을 모두 산 채로 각각 구덩이에 파묻어 죽였는데, 이 일을 가리켜 '갱유(坑儒)'라고 한다.

불가사의(不可思議)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 없어 이상하고 야릇한 것
불간지서(不刊之書) 영구히 전하여 없어지지 않는 양서(良書). 불후(不朽)의 책
불고염치(不顧廉恥) 염치를 돌보지 않음.
불구대천(不俱戴天) 하늘을 같이 이지 못한다는 뜻.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원수를 일컬음.
《出典》'禮記' 《禮記》'곡레편(曲禮篇)'에는 '不俱戴天之?'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아버지의 원수와는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고
형제의 원수를 보고 무기를 가지러 가면 늦으며
친구의 원수와는 나라를 같이해서는 안된다.
父之?不與共戴天
兄弟之?不反兵
交遊之?不同國
즉, 아버지의 원수와는 함께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으므로 반드시 죽여야 한다. 형제의 원수를 만났을 때 집으로 무기를 가지러 갔다가 원수를 놓쳐서는 안 되므로 항상 무기를 휴대하고 다니다가 그 자리에서 죽여야 한다. 친구의 원수와는 한 나라에서 같이 살 수 없으므로 나라 밖으로 쫓아내던가 아니면 역시 죽여야 한다.
또 이 말은《맹자(孟子)》'盡心篇'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孟子의 말과 비교가 되어 다시 생각게 한다. "내 이제야 남의 아비를 죽이는 것이 중한 줄을 알겠노라. 남의 아비를 죽이면 남이 또한 그 아비를 죽이고 남의 형을 죽이면 남이 또한 그 형을 죽일 것이다. 그러면 스스로 제 아비나 형을 죽이지는 않겠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이니라." 오늘날 이 말은 아버지의 원수에 한하지 않고 '더불어 살 수 없을 정도로 미운 놈'이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동의어】대천지수(戴天之?), 불공대천(不共戴天) 【원 말】불구대천지원수(不俱戴天之怨?), 불공대천지수(不共戴天之?)
不共戴天之讐(불공대천지수)세상을 같이 살 수 없는 원수, 즉 어버이의 원수. (=不俱戴天之讐) 不俱戴天之讐(불구대천지수)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을 만큼 깊은 원수. 원래는 아버지의 원수를 의미.(=不共戴天之讐)
불모지지(不毛之地) 아무 식물도 자라지 못하는 메마른 땅.
불문가지(不問可知) 묻지 않아도 능히 알 수 있음.
불문곡직(不問曲直) 일의 옳고 그름을 묻지 아니하고 다짜고짜로 행동함.
불사약(不死藥) 죽지 않는 약
불세지재(不世之才) 대대로 드문 큰 재주. 세상에 드문 큰 재주.
불수진(拂鬚塵) (남의) 수염에 붙은 티끌을 털어 준다는 뜻. 곧
                         ① 윗사람이나 권력자에게 아부(아첨)함의 비유.
                         ② 상사(上司)에 대한 비굴한 태도의 비유.
[준말] 불수(拂鬚). [출전]《宋史》〈寇準傳〉송(宋:北宋, 960∼1127)나라의 4대 황제인 인종(仁宗:1022∼1063) 때 강직하기로 유명한 구준(寇準)이라는 정의파 재상이 있었다. 그는 나라를 위해 여러 유능한 인재를 발탁, 천거했는데 참정(參政:從二品) 정위(丁謂)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구준이 정위를 포함한 중신들과 회식(會食)을 하는데 음식찌꺼기가 수염에 붙었다. 이것을 본 정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기 소맷자락으로 공손히 털어냈다. 그러자 구준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허, 참. 참정이라면 나라의 중신인데, 어찌 남의 '수염에 붙은 티끌을 털어 주는[拂鬚塵]' 그런 하찮은 일을 하오?" 정위는 부끄러워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도망치듯 그 자리를 물러갔다고 한다.  
불언지화(不言之化) 말로 하지 않고 자연히 덕으로 주는 감화.
불요불굴(不撓不屈) 결심이 흔들리거나 굽힘이 없이 억셈. (不搖不屈로도 쓴다.)
불원천불우인(不怨天不尤人) 하늘도 원망하지 않고 다른 사람도 원망하지 않는다.
                                            자신의 처지를 잘 알기에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知命者不怨天,知己者不怨人)

불입호혈부득호자(不入虎穴不得虎子)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는 호랑이
                                                         새끼를 못 잡는다는 뜻으로, 모험을 하지
                                                         않고는 큰 일을 할 수 없음의 비유..
                                                       
 [ 참조] 수청무대어(水淸無大魚). [출전]《後漢書》〈班超傳〉 후한(後漢) 초기의 장군 반초(班超)는 중국 역사서의 하나인《한서(漢書)》를 쓴 아버지 반표(班彪), 형 반고(班固), 누이동생 반소(班昭)와는 달리 무인(武人)으로 이름을 떨쳤다. 반초는 후한 2대 황제인 명제(明帝) 때(74년) 서쪽 오랑캐 나라인 선선국[?善國:누란(樓蘭)]에 사신으로 떠났다. 선선국왕은 반초의 일행36명을 상객(上客)으로 후대했다. 그런데 어느 날, 후대는 박대(薄待)로 돌변했다. 반호는 궁중에 무슨 일이 있음을 직감하고 즉시 부하 장수를 시켜 진상을 알아보라고 했다. 이윽고 부하 장수는 놀라운 소식을 갖고 왔다. "지금 신선국에는 흉노국(匈奴國)의 사신이 와 있습니다. 게다가 대동한 군사만 해도 1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흉노는 옛부터 한족(漢族)이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아 침입을 막았을 정도로 영맹(獰猛)한 유목민족이다. 반초는 즉시 일행을 불러모은 다음 술을 나누며 말했다. "지금 이곳에는 흉노국의 사신이 1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와 있다고 한다. 신선국왕은 우리를 다 죽이거나 흉노국의 사신에게 넘겨 줄 것이다. 그러면 그들에게 끌려가서 개죽음을 당할 텐데 어떻게 하면 좋겠나?"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야 없지 않습니까? 싸워야 합니다!" 모두들 죽을 각오로 싸우자고 외쳤다. "좋다. 그럼 오늘 밤에 흉노들이 묵고 있는 숙소로 쳐들어가자.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는 호랑이 새끼를 못 잡는다[不入虎穴不得虎子]'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날 밤 반초 일행은 흉노의 숙소에 불을 지르고 닥치는 대로 죽였다. 이 일을 계기고 선선국이 굴복했음은 물론 인근 50여 오랑캐의 나라들도 한나라를 상국(上國)으로 섬기게 되었다.
불철주야(不撤晝夜) 밤낮을 가리지 아니함. 조금도 쉴 사이 없이 일에 힘쓰는 모양.
불초(不肖) 아버지를 닮지 않고 어리석다.
불초지부(不肖之父) 선대(先代)의 덕망을 닮지 못한 어리석은 아버지. (불초(不肖
                               )는 닮지 않았다는 뜻. 아버지의 덕망을 닮지 않아 어리석다는 뜻.)
불치하문(不治下問)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음.
불편부당(不偏不黨)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공평한 태도. 늘 그러한 자연의
                               길(道)의 본질을 말한다.
불혹(不惑) 마흔 살의 나이. 《出典》'論語' 爲政篇 孔子는 일생을 회고하며 자신의 학문 수양의
                       발전 과정에 대해《論語》'爲政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열 다섯 살 때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志學> 서른 살 때 입신했다.三十而立<而立> 마흔 살 때는 미혹하지 않았고四十而不惑<不惑> 쉰 살 때 하늘의 명을 알았다.五十而知天命<知命> 예순 살 때는 귀에 따랐고六十而耳順<耳順> 일흔 살이 되니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從心>
<註> 20세 : 약관(弱冠)60세 : 환갑(還甲)70세 : 고희(古稀) 77세 : 희수(喜壽)88세 : 미수(米壽)99세 : 백수(白壽)【동의어】불혹지년(不惑之年)
불혹지년(不惑之年) 불혹의 나이. 곧, 마흔 살.
붕정만리(鵬程萬里) 붕새의 날아가는 하늘 길이 만 리로 트임. 곧,
                             전도가 극히 양양한 장래.
《出典》'莊子' 逍遙遊篇 이 말은《莊子》'逍遙遊篇' 첫머리에 나오는 에피소드에서 나온 것이다. 『북쪽 바다에 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을 곤(鯤)이라 한다. 곤의 큰 것은 그 길이가 몇 천리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 화(化)하여 새가 되니, 그 이름을 붕(鵬)이라 한다. 붕새의 등은 그 길이가 몇 천리인지 알지 못한다. 성내어 날면 그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의 기운으로 장차 남쪽 바다로 옮기는데, 남쪽 바다는 하늘의 연못이다. 제해(齊諧)라는 사람이 있어 다음과 같은 괴이한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 있다. <붕새가 남쪽 바다로 옮김에, 물을 치기를 3천 리나 하고, 거기서 일어나는 선풍(旋風)을 타고 위로 올라가기를 9만 리나 하며, 6개월이나 걸려서 남쪽 바다에 가서 쉰다.> 아지랑이와 티끌과 먼지를 생물들이 뿜어내건만, 하늘은 푸르고 푸르르니, 그 올바른 색깔인가? 그 멀어서 끝간 데가 없는 까닭인가? 그 내려다봄에 또한 이와같을 뿐이다. 또한 대저 물의 쌓임이 두텁지 않으면, 큰 배를 띄움에 힘이 없고, 술잔의 물을 뜰의 파인 곳에 부으면, 지푸라기는 배가 되어 뜨지만, 잔을 놓으면 엎어진다. 물은 얕은데 배는 크기 때문이다. 바람의 쌓임이 두텁지 못하면, 그 큰 날개를 띄움에 힘이 없다. 그러므로 9만 리면 바람이 그 아래에 있다. 그리하여 뒤에 곧 바람을 타고 푸른 하늘을 등지고서, 아무 것도 걸리는 것이 없다. 이리하여 지금 비로소 붕새는 남쪽으로 날아가려는 것이다.』 <붕정만리(鵬程萬里)>는 이 이야기에서 나왔다.
비견계종(比肩繼踵)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발 뒤꿈치를 이음. 계속해서 끊이지 않고
                               잇달아 속출함을 말한다. 여러 사람을 줄지어 세우는 것을 의
                               미하기도 한다.
비례물동(非禮勿動) 예(禮)가 아니면 행동으로 옮기지도 말아라
비례물시(非禮勿視) 예(禮)가 아니면 보지도 말아라
비례물언(非禮勿言) 예(禮)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아라
비례물청(非禮勿聽) 예(禮)가 아니면 듣지도 말아라
비몽사몽(非夢似夢) 꿈인지 생시인지 알수 없는 어렴풋함
비방지목(誹謗之木) 불만이나 불평을 써붙여 임금이 보게 하는 나무
비비유지(比比有之) 드물지 않음
비육지탄(脾肉之嘆) 오랫동안 말을 타지 않았기 때문에 넓적다리에 살이 찐 탄식.
                               곧,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하여 헛되이 세월만
                               보내는 것의 탄식.
《出典》'三國志' 蜀志  유비(劉備)는 198년에 조조(曹操)와 협력하여, 한 마리 이리와 같은 용장(勇壯) 여포(呂布)를 하비(下?)에서 격파한 다음, 한(漢)의 임시 수도 허창(許昌)으로 올라가 조조의 주선(周旋)으로 헌제(獻帝)에게 배알(拜謁)하고 좌장군에 임명되었지만, 그대로 조조의 휘하에 있는 것을 싫어하여 허창을 탈출하여 각지로 전전한 끝에 황족(皇族)의 일족인 형주 (荊州)의 유표(劉表)에게 의지하여 조그만 고을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유표에게 초대되어 형주성(荊州城)에 갔을 때, 변소에서 볼일을 보고 일 어서던 유비는 문득 자신의 넓적다리에 살이 많이 붙은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눈물을 흘렸다.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오자 유표가 유비의 눈물 흔적을 보고는 그 까닭을 묻자, 유비의 대답은 이러했다. "나는 지금까지 항상 말을 타고 전장을 돌아다녀서, 넓적다리에 살이 붙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말을 타지 않고 너무 빈둥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살이 들러붙었습니다. 세월이 가는 것은 빨라 늙음이 이르는데도, 아직 공업(功業)을 세우지 못하였으니 그러므로 슬플 뿐입니다." 備住荊州數年 嘗於表坐起至厠 見?肉生 慨然流悌 還坐 表怪問備 備曰 吾常身不離鞍 ?肉皆消 今不復騎 ?裏肉生 日月若馳 老將至矣 而功業不建 是以悲耳.
비일비재(非一非再) 한두 번이 아님
빈계지신(牝鷄之晨) 암탉이 새벽을 알리느라고 운다. 아내가 남편의 권리를 잡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빈자일등(貧者一燈) 가난 속에서 바친 등이 값이 있다.
빙공영사(憑公營私) 공사를 빙자하여 사리(私利)를 꾀함.
빙자옥질(氷姿玉質) 얼음같이 투명한 모습과 옥과 같이 뛰어난 바탕. 용모와 재주가
                               모두 뛰어남을 비유하는 말이다.(=仙姿玉質)
'매화'의 이칭.
빙청옥윤(氷淸玉潤) 얼음처럼 맑고 구슬처럼 윤이 난다. 장인과 사위의 인물이 다
                               같이 뛰어남을 말한다.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 얼음과 숱은 서로 용납되지 아니함. 물과 불처럼
                                    상극임. 빙탄(氷炭)  
《出典》'楚辭'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이란, 그 성질이 전혀 반대여서, 아무래도 타협하기 어려운 사이를 말한다. 다음은《楚辭》'칠간(七諫)'에 실려 있는 구절이다. 사람 일의 불행을 슬퍼하여, 太命을 붙여서 함지(咸池)에게 맡긴다.

몸은 병을 얻어 쉬지 못하고,
마음은 湯임금과 같이 끓어오르네.
얼음과 숯은 가히 써 서로 함께하지 못하니,
내 본디부터 목숨이 길지 못함을 알겠구나.
홀로 괴롭게 죽어 즐거움이 없음을 슬퍼하여,
나는 나이가 아직 다하지 않음을 슬퍼한다.
氷炭不可以相竝兮
吾固知乎命之不長
哀獨苦死之無樂兮
措余年之未央.
빙탄지간(氷炭之間) 서로 화합될 수 없음.(氷炭不相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