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

 

나약(懦弱) 의지가 약함
낙담상혼(落膽喪魂) 쓸개가 떨어지고 혼을 잃음. 몹시 놀라 정신이 없음을 일컫
                               는다.
낙백(落魄) 뜻을 얻지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
낙양지가귀(洛陽紙價貴) '낙양의 지가를 올리다'하는 뜻. 곧 저서가 호평을
                                      받아 베스트 셀러가 됨을 이르는 말.
[출전]《晉書》〈文 傳〉 [원말] 낙양지가귀(洛陽紙價貴). [동의어] 낙양지가고(洛陽紙價高). 낙양지가(洛陽紙價). 진(晉:265∼316)나라 시대, 제(齊)나라의 도읍 임치(臨淄) 출신의 시인에 좌사(左思)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추남에다 말까지 더듬었지만 일단 붓을 잡으면 장려한 시를 썼다. 그는 임치에서 집필 1년 만에《제도부(齊都賦)》를 탈고하고 도읍 낙양[洛陽:하남성(河南省) 내]으로 이사한 뒤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도읍 성도(成都), 오(吳)나라의 도읍 건업(建業:南京), 위(魏)나라의 도읍 업(?)의 풍물을 읊은《삼도부(三都賦)》를 10년 만에 완성했다. 그러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화(張華)라는 유명한 시인이《삼도부》를 읽어 보고 격찬했다. "이것은 반(班)ㅗ장(張)의 유(流)이다." 후한(後漢) 때《양도부(兩都賦)》를 지은 반고[班固:《한서(漢書)》저술],《이경부(二京賦)》를 쓴 장형(張衡)과 같은 대시인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자《삼도부》는 당장 낙양의 화제작이 되었고, 고관대작은 물론 귀족ㅗ환관ㅗ문인ㅗ부호들이 그것을 다투어 베껴 썼다. 그 바람에 '낙양의 종이값이 올랐다[洛陽紙價貴]'고 한다. 난의포식(暖依飽食) 생활에 부자유스러움이 없다.
낙이불음(樂而不淫) 즐기기는 하나 음탕하지는 않게 한다. 즐거움의 도를 지나치지
                               않음을 뜻함.

난형난제(難兄難弟) 누구를 형이라 하고 누구를 동생이라 할지 분간하기 어렵다.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막상막하(莫上莫下),
《出典》'世說新語' 德行篇  백중지세(伯仲之勢) "양상군자(梁上君子)"로 유명한 후한(後漢)의 진태구(陳太丘)가 낭능후(郎陵候)를 지낸 순숙(筍淑)의 집을 아들 진기(陳紀 : 元方)와 진심(陳諶 : 季方), 진군(陳群 : 長方)을 데리고 찾아갔다. 순숙은 빈약하고 검소하여 노복도 없었다. 그들이 도착하자 순숙은 어린 막 내만 방에 두고 나머지 일곱 명은 전부 심부름을 시켰다. 이 때 태사(太史)가 임금께 아뢰기를, "덕성(德星)이 동쪽 순숙의 집에 다 모여 있다."라고 했다. 한번은, 진식(陳太丘)이 친구와 어디를 가기로 약속하고 기다렸으나 워낙 늦어 먼저 출발했는데 늦게 온 친구가 진식을 욕하자 그 때 진기(陳紀 : 元方)는 이렇게 말했다. "손님께서 아버지와 정오에 만나기로 약속하시고는 약속 시간이 훨씬 지나 이제 오셨으니 손님과 제 아버지 중 누가 신의를 저버린 것입니까? 그리고 자식 앞에서 그 아버지를 욕한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 아닙니까?" 진식(陳太丘)을 찾아왔던 사람은 친구의 어린 아들에게 책망을 당하는 순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이내 사과하려 했으나 어린 진기(陳紀 : 元方)는 이미 대문 안으로 들어간 뒤였다. 또 한번은 사촌간인 진기(陳紀 : 元方)의 아들과 진심(陳諶 : 季方)의 아들 사이에 서로 자기 아버지의 공적과 덕행에 대해 논쟁을 벌이다가 결말이 나지 않자 할아버지인 진식(陳太丘)에게 와서 판정을 내려줄 것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때 진식(陳太丘)은, "원방(元方)도 형 되기가 어렵고 계방(季方)도 동생 되기가 어렵다.(元方難爲兄 季方難爲弟)"라고 말했다 한다.
낙이사촉(樂而思蜀) 타향(他鄕)의 생활이 즐거워 고향 생각을 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 눈앞의 즐거움에 겨워 근본을 잊게 될 때를 비유하기도
                               한다.
낙정하석(落穽下石) 함정에 빠진 데다가 돌까지 던진다. 남의 환란(患亂)에 다시
                               위해(危害)를 준다는 말이다.
낙화유수(落花流水) 떨어지는 꽃과 흐르는 물. 남녀간의 그리운 심정을 뜻하기도
                               한다.
난사필적이(難事必作易) 어려운 일은 쉬운 일에서 일어난다. 쉬운 일을 신중히 하면
                                     어려운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난상공론(爛商公論) 여러 사람들이 잘 의논 함
난상지목불가앙(難上之木不可仰) 오르지 못할 나무 쳐다보지도 말라.
난상토의(爛商討議) 낱낱이 들어 잘 토의함
난신적자(亂臣賊子) 임금을 죽이는 신하와 어버이를 해하는 자식. 극악무도한 자를
                               말한다.
난의포식(暖衣飽食) 따뜻한 옷을 입고 음식을 배불리 먹어 衣食에 부자유함이 없음.
난형난제(難兄難弟) 누구를 형이라 하고 누구를 동생이라 할 지 분간하기 어렵다.
                               사물의 우열이 없다. 곧 비슷하다는 말.

날조(捏造) 근거 없는 일을 사실처럼 꾸며 만듦
남가일몽(南柯一夢) 덧없이 지나간 한 때의 헛된 부귀나 행복.
                               
《出典》'南柯記' 異聞集  당(唐)나라 9대 황제인 덕종(德宗 : 780-804) 때 광릉(廣陵) 땅에 순우분(淳于?)이란 사람이 있었다. 어느날, 순우분이 술에 취해 집 앞의 큰 홰나무 밑에서 잠이 들었다. 그러자 어디서 남색 관복을 입은 두 사나이가 나타나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괴안국왕(槐安國王)의 명을 받고 대인(大人)을 모시러 온 사신이옵니다." 순우분이 사신을 따라 홰나무 구멍 속으로 들어가자 국왕이 성문 앞에서 반가이 맞이했다. 순우분은 부마(駙馬)가 되어 궁궐에서 영화를 누리다가 남가(南柯) 태수를 제수(除授)받고 부임했다. 남가군을 다스린 지 20년, 그는 그 간의 치적을 인정받아 재상(宰相)이 되었다. 그러나 때마침 침공해 온 단라국군(檀羅國軍)에게 참패하고 말았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아내까지 병으로 죽자 관직을 버리고 상경했다. 얼마 후 국왕은 '천도(遷都)해야할 조짐이 보인다'며 순우분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다.잠에서 깨어난 순우분은 꿈이 하도 이상해서 홰나무 뿌리 부분을 살펴보았다. 과연 구멍이 있었다. 그 구멍을 더듬어 나가자 넓은 공간에 수많은 개미의 무리가 두 마리의 왕개미를 둘러싸고 있었다.여기가 괴안국이었고, 왕개미는 국왕 내외였던 것이다. 또 거기서 '남쪽으로 뻗은 가지[南柯]'에 나 있는 구멍에도 개미떼가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남가군이었다. 순우분은 개미 구멍을 원상태로 고쳐 놓았지만 그날 밤에 큰 비가 내렸다. 이튿날 구멍을 살펴보았으나 개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천도(遷都)해야할 조짐'이란 바로 이 일이었던 것이다. 【동의어】남가지몽(南柯之夢), 남가몽(南柯夢), 괴몽(槐夢) 【유사어】한단지몽(邯鄲之夢), 무산지몽(巫山之夢), 일장춘몽(一場春夢)
[주] 제수(除授) : 천거(薦擧)의 절차를 밟지 아니하고 임금이 직접 벼슬을 시킴.
남곽남취(南郭濫吹) 학문과 기예에 전문적 지식과 체계나 조리도 없이 함부로 날
                               뛰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남귤북지(南橘北枳) 강남의 귤나무를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나무로 변함.
                               곧, 사람은 사는 곳의 환경에 따라 변하게 됨을 비유.
《出典》'晏子春秋' 춘추시대 말기, 제(齊)나라에 안영(晏?)이란 유명한 재상이 있었다. 어느 해, 초(楚)나라 영왕(靈王)이 그를 초청했다. 안영이 너무 유명하니까 만나보고 싶은 욕망과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싶은 심술이 작용한 것이다. 수인사가 끝난 후 영왕이 입을 열었다. "제(齊)나라에는 그렇게도 사람이 없소?" "사람이야 많이 있지요." "그렇다면 경과 같은 사람밖에 사신으로 보낼 수 없소?" 안영의 키가 너무 작은 것을 비웃는 영왕의 말이었다. 그러나 안영은 태연하게 대꾸하였다. "예, 저의 나라에선 사신을 보낼 때 상대방 나라에 맞게 사람을 골라 보내는 관례가 있습니다. 작은 나라에는 작은 사람을, 큰 나라에는 큰 사람을 보내는데 신(臣)은 그 중에서도 가장 작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뽑혀서 초나라로 왔습니다." 가는 방망이에 오는 홍두깨격의 대답이었다. 그때 마침 포리가 죄인을 끌고 지나갔다. "여봐라! 그 죄인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 "예, 제(齊)나라 사람이온데, 절도 죄인입니다." 초왕(楚王)은 안영에게 다시 물었다. "제나라 사람은 원래 도둑질을 잘 하오?"하고 안영에게 모욕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안영은 초연한 태도로 말하는 것이었다. "강남에 귤(橘)이 있는데 그것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枳]가 되고 마는 것은 토질 때문입니다. 제(齊)나라 사람이 제(齊)나라에 있을 때는 원래 도둑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랐는데 그가 초(楚)나라에 와서 도둑질한 것을 보면, 역시 초나라의 풍토 때문인 줄 압니다." 그 기지(機智)와 태연함에 초왕은 안영에게 사과를 했다. "애당초 선생을 욕보일 생각이었는데 결과는 과인이 욕을 당하게 되었구려."하고는 크게 잔치를 벌여 안영을 환대하는 한편 다시는 제나라를 넘볼 생각을 못했다. 【동의어】귤화위지(橘化爲枳)
남대문입납(南大門入納) 주소도 모르는 채 집을 찾거나, 또는 주소 불명의 편지.
남부여대(南負女戴) 가난한 사람들이 떠돌아다니는 형상을 가리킴.
                             남자는 지고 여자는 임
남상(濫觴) 양자강과 같이 큰 강물도 그 원천은 술잔을 띄울 만한 여윈 물이었다는
                  뜻으로, 사물을 시초, 출발을 말함. =효시(嚆矢).
《出典》筍子 孔子家語 공자의 제자에 자로(子路)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공자에게 사랑도 가장 많이 받았지만 꾸중도 누구보다 많이 듣던 제자였다. 어쨌든 그는 성질이 용맹하고 행동이 거친 탓에 무엇을 하든 남의 눈에 잘 띄었다. 어느 날 자로가 화려한 옷을 입고 나타나자 공자는 말했다. "양자강(揚子江 : 長江)은 사천(泗川)땅 깊숙히 자리한 민산(岷山)에서 흘러내리는 큰 강이다. 그러나 그 근원은 '겨우 술잔에 넘칠 정도[濫觴]'로 적은 양의 물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하류로 내려오면 물의 양도 많아지고 흐름도 빨라져서 배를 타지 않고는 강을 건널 수가 없고, 바람이라도 부는 날에는 배조차띄울 수 없게 된다. 이는 모두 물의 양이 많아졌기 때문이니라."
공자는 모든 일은 시초가 중요하며 시초가 나쁘면 갈수록 더 심해진다는 것을 깨우쳐 주려 했던 것이다. 공자의 이 이야기를 들은 자로(子路)는 당장 집으로 돌아가서 옷을 갈 아 입었다고 한다.
《筍子》'孔子家語'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子路가 옷을 잘 차려입고 孔子님을 뵈었다. 그러자 孔子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由야, 이 옷자락은 무엇이냐? 옛날에 강은 민산(岷山)으로부터 흘러나왔다. 그 처음에 나옴에 그 근원은 가히 써 술잔에 넘칠 만하였다. 그러나 그 강의 나루에 이르러서는, 배 를 늘어놓지 못하고 바람을 피하지 못하여, 건너지 못하였다. 오직 下流에 물이 많음이 아니겠느냐? 지금 너도 의복을 이미 盛하게 차려 입고 얼굴빛이 충만되었구나. 천하에 장차 누가 즐겨 너에게 간하랴!" 子路盛服見孔子 孔子曰 由 是??何也 昔者江出於岷山 其始出也 其源可以濫觴 乃其至江津 不放舟不避風 則不可涉也 非唯下流水多邪 令女衣服旣盛 顔色充盈 天下且孰肯諫女矣. 【유사어】효시(嚆矢), 권여(權與) [주] 양자강 : 티베트 고원의 북동부에서 발원하여 동중국해로 흘러 들어감. 장강(長江)이라고도 불림. 길이 5800Km. 민산 : 사천(四川)청해(靑海) 두 성(省)의 경계에 위치한 산.
남선북마(南船北馬) 남쪽은 배로 북쪽은 말로. 바쁘게 여기저기를 돌아다님
남우(濫우) 남(濫)은 실제로는 능력이 없으면서 함부로 한다는 뜻. 우( )는 대나
                  무로 만든 악기. 즉, '우( )를 함부로 분다'는 뜻이다. 무능한 사람이
                  재능이 있는 것처럼 속여 외람되이 높은 벼슬을 차지하는 것을 말한다.

남취(濫吹) 무능한 사람이 유능한 체하다.
남풍불경(南風不競) 힘이나 기세를 떨치지 못하다.
낭자야심(狼子野心) 이리 새기는 아무리 길들여 기르려 해도 야수의 성질을 벗어
                               나지 못한다. 본래 성질이 비뚤어진 사람은 아무리 은혜를 베
                               풀어도 끝내는 배반한다는 비유로 쓰인다.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의 송곳. 곧, 재능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그것을
                             감추려해도 저절로 드러나게 마련이란 뜻.
《出典》'史記' 平原君列傳 전국시대 말엽, 진(秦)나라의 공격을 받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동생이자 재상인 평원군(平原君 : 趙勝)을 초(楚)나라에 보내어 구원군(救援軍)을 청하기로 했다. 20명의 수행원이 필요한 평원군은 그의 3,000여 식객(食客) 중에서 19명은 쉽게 뽑았으나 나머지 한 사람을 뽑지 못해 고심하고 있었다. 이때 모수(毛遂)라는 식객이 자천(自薦)하고 나섰다. "대감,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평원군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그대는 내 집에 온 지 얼마나 되었소?" "이제 3년이 됩니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마치 '주머니 속의 송곳[囊中之錐]' 끝이 밖으로 나오듯이 남의 눈에 드러나는 법이오. 그런데 내 집에 온 지 3년이나 되었다는 그대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이름이 드러난 적이 없지 않소?" "그것은 나리께서 이제까지 저를 단 한 번도 주머니 속에 넣어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번에 주머니 속에넣어 주시기만 한다면 끝뿐 아니라 자루[柄]까지 드러내 보이겠습니다." 이 재치있는 답변에 만족한 평원군은 모수(毛遂)를 20번째 수행원으로 뽑았다. 초나라에 도착한 평원군은 모수가 활약한 덕분에 국빈(國賓)으로 환대 받으면서 구원군도 쉽게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동의어】추처낭중(錐處囊中)
낭중취물(囊中取物) 주머니 안에 든 물건을 얻음. 곧, 손쉽게 얻을 수가 있다는 뜻.
내성불구(內省不   ) 마음 속에 조금도 부끄러울 것이 없음. 즉 마음이 결백함을
                               뜻한다.

내우외환(內憂外患) 나라 안의 걱정과 외적의 침입에 대한 근심.
내윤외랑(內潤外朗) 옥의 광택이 안에 함축된 것을 내윤(內潤)이라 하고, 밖으로
                               나타난 것을 외랑(外朗)이라 함. 재주와 덕망을 겸비한 것을
                               비유한다.

내조지공(內助之功) 아내가 집안 일을 잘 다스려 남편을 돕는다.
내청외탁(內淸外濁) 마음은 깨끗하나 행동은 흐린 것처럼 함. 군자(君子)가 난세(
                               亂世)를 당하여 명철보신(明哲保身) 하는 처세술.
노갑이을(怒甲移乙) 어떤 사람에게서 당한 노여움을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 하다.
노당익장(老當益壯) 사람은 늙을수록 더욱 기운을 내어야 하고 뜻을 굳게 해야
                               한다. 줄여서 노익장(老益壯)이라고도 쓴다.
노래지희(老萊之戱) 주(周)나라의 노래자(老萊子)가 칠십의 나이에 무늬 있는 옷을
                               입고 동자의 모습으로 재롱을 부려 부모에게 자식의 늙음을
                               잊게 해드린 일. 자식이 나이가 들어도 부모의 자식에 대한
                               마음은 똑같으니 변함없이 효도를 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이다.
노류장화(路柳墻花) 길 가의 버들과 담 밑의 꽃은 누구든지 쉽게 만지고 꺾을 수
                               있다. 기생(妓生)을 의미한다.
노마십가(駑馬十駕) 둔한 말도 열 대의 수레를 끌 수 있음. 재주 없는 사람도 노력
                               하고 태만하지 않으면 재주 있는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음을 비유한다.

노마지지(老馬之智) 하찮은 인간이라도 나름대로의 장점과 특징이 있다.
                         
      [출전]《韓非子》〈說林篇〉 늙은 말의 지혜란 뜻으로,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저마다 장기나 장점을 지니고 있음을 이르는 말. 춘추 시대, 오패(五?)의 한 사람이었던 제(齊)나라 환공(桓公:재위 B.C.685∼643) 때의 일이다. 어느 해 봄, 환공은 명재상 관중(管仲:?∼B.C.645)과 대부 습붕(柝朋)을 데리고 고죽국[孤竹國:하북성(河北省) 내]을 정벌하러 나섰다. 그런데 전쟁이 의외로 길어지는 바람에 그 해 겨울에야 끝이 났다. 그래서 혹한 속에 지름길을 찾아 귀국하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전군(全軍)이 진퇴 양난(進退兩難)에 빠져 떨고 있을 때 관중이 말했다. "이런 때 '늙은 말의 지혜[老馬之智]'가 필요하다." 즉시 늙은 말 한 마리를 풀어놓았다. 그리고 전군이 그 뒤를 따라 행군한 지 얼마 안 되어 큰길이 나타났다. 또 한번은 산길을 행군하다가 식수가 떨어져 전군이 갈증에 시달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습붕이 말했다. "개미란 원래 여름엔 산 북쪽에 집을 짓지만 겨울엔 산 남쪽 양지 바른 곳에 집을 짓고 산다. 흙이 한 치[一寸]쯤 쌓인 개미집이 있으면 그 땅 속 일곱 자쯤 되는 곳에 물이 있는 법이다." 군사들이 산을 뒤져 개미집을 찾은 다음 그곳을 파 내려가자 과연 샘물이 솟아났다. 이 이야기에 이어 한비자(韓非子:韓非, ?∼B.C.233)는 그의 저서《한비자》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관중의 총명과 습붕의 지혜로도 모르는 것은 늙은 말과 개미를 스승으로 삼아 배웠다. 그러나 그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이 어리석음에도 성현의 지혜를 스승으로 삼아 배우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잘못된 일이 아닌가." [주] '노마지지'란 여기서 나온 말인데 요즈음에도 '경험을 쌓은 사람이 갖춘 지혜'란 뜻으로 흔히 쓰이고 있음.  
노심초사(勞心焦思) 몹시 초조하게 생각하고 속을 태움.
노승발검(怒蠅拔劍) 파리 때문에 성질이 난다고 칼을 뽑아 듦. 작은 일을 갖고 수
                               선스럽게 화내는 것을 비유한다.

노이무공(勞而無功) 애만 쓰고 애쓴 보람이 없다.
녹림(綠林) 세상을 피한 호걸들이 모인 도적의 소굴 [출전]《漢書》〈王莽傳〉.《後漢書
                      》〈劉 傳〉 [동의어] 녹림호객(綠林豪客) [유사어] 백랑(白浪). 백파(白波). 야객(夜客). 전한(前漢:B.C. 202∼A.D. 8) 말, 왕실의 외척인 대사마(大司馬) 왕망(王莽)은 한 왕조를 무너뜨리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나라 이름을 신(新:8∼24)이라 일컬었다. 왕망은 농지, 노예, 경제 제도 등을 개혁하고 새로운 정책을 폈으나 결과는 반대였다. 복잡한 제도에 걸려 농지를 잃고 노예로 전락하는 농민들이 점점 늘어났다. 또한 화폐가 8년 동안에 네 차례나 바뀌는 등 경제정책 역시 실패로 끝나는 바람에 백성들의 생활은 날로 어려워졌다. 그래서, 왕망은 백성들은 물론 귀족들로부터도 심한 반감을 샀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서북 변경의 농민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이를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의 반란이 잇따라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지금의 호북성 당양현(湖北省當陽縣) 내의 녹림산에 근거지를 둔 8000여의 한 무리는 스스로를 '녹림지병(綠林之兵)'이라 일컫고 지주의 창고와 관고(官庫)를 닥치는 대로 털었다. 그 후 이 녹림지병은 5만을 헤아리는 대세력으로 부상했는데 후한(後漢)을 세운 광무제(光武帝:25∼57) 유수(劉秀)는 그들을 십분 이용하여 왕망의 신(新) 나라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녹사불택음(鹿死不擇音) 사슴은 소리를 아름답게 내지만, 죽을 때를 당하면 아름
                                     다운 소리를 가려서 낼 여유가 없다. 사람도 위급한 지경을
                                     당했을 때는 나쁜 소리 즉, 좋지 않은 말이 나오게 마련
                                     이다.

녹음방초(綠陰芳草) 푸른 나무 그늘과 꽃다운 풀. 곧, 여름의 자연 경치.
녹의홍상(綠衣紅裳) 연두색 저고리와 다홍치마. 곧, 젊은 여자의 곱게 차린 복색.
논공행상(論功行賞) 공로의 크고 작음을 조사하여 상을 줌.
농단(壟斷) 권력을 독점하여 국정을 좌지우지하다.
                 
 [원말] 농단(籠斷). [출전]《孟子》〈公孫추篇(공손추편)〉 (깎아 세운 듯이) 높이 솟아 있는 언덕이란 뜻. 곧 ① 재물을 독차지함. ② 이익을 독점함. 전국시대, 제(齊)나라 선왕(宣王) 때의 일이다.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실현을 위해 제국을 순방 중이던 맹자는 제나라에서도 수년간 머물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하려 했다. 그러자 선왕은 맹자에게 높은 봉록을 줄 테니 제나라를 떠나지 말아 달라고 제의했다. 그러나 맹자는 거절했다. "전하, 제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데도 봉록에 달라붙어서 '재물을 독차지[壟斷]'할 생각은 없나이다." 이렇게 말한 맹자는 '농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농단'은 '깎아 세운 듯이 높이 솟아 있는 언덕'이란 뜻인데, 전하여 '재물을 독차지한다', '이익을 독점한다'는 뜻으로 쓰이게 된 데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먼 옛날에는 시장에서 물물 교환을 했었다. 그런데 한 교활한 사나이가 나타나 시장의 상황을 쉽게 알 수 있는 '높은 언덕[壟斷]'에 올라가 좌우를 살펴서 장사함으로써 '이익을 독점'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모두 이 사나이의 비열(卑劣)한 수법을 증오(憎惡)하고 그에게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이 때부터 장사꾼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가 생겼다고 한다.  
농가성진(弄假成眞) 장난 삼아 한 것이 참으로 한 것같이 됨.
농와지경(弄瓦之慶) 질그릇을 갖고 노는 경사, 딸을 낳은 경사.
농장지경(弄璋之慶) 장(璋)으로 만든 구기를 갖고 노는 경사, 아들을 낳은 경사.
농조연운(籠鳥戀雲) 새장 속에 있는 새는 구름을 그리워 한다. 곧 몸이 속박 당한
                               사람은 자유를 갈망한다는 뜻이다.

누란지세(累卵之勢) 알을 쌓아 놓은 듯한 형세. 곧, 매우 위태로운 형세. 《出典》'史記'                                        范雎列傳  전국시대, 세 치의 혀[舌] 하나로 제후를 찾아 유세(遊說)하는 세객(說客)들은 거의 무두 책사(策士) 모사(謀士)였는데, 그 중에서도 여러 나라를 종횡으로 합쳐서 경륜하려던 책사 모사를 종횡가(縱橫家)라고 일컬었다. 위(魏)나라의 한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난 범저(范雎)도 종횡가를 지향하는 사람이었으나 이름도 연줄도 없는 그에게 그런 기회가 쉽사리 잡힐 리 없었다. 그래서 우선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중대부(中大夫) 수가(須賈)의 종자(從者)가 되어 그를 수행했다. 그런데 제나라에서 수가보다 범저의 인기가 더 좋았다. 그래서 기분이 몹시 상한 수가(須賈)는 귀국 즉시 재상에게 '범저는 齊나라와 내통하고 있다'고 참언(讒言)했다. 범저는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거적에 말려 변소에 버려졌다. 그러나 그는 모사(謀士)답게 옥졸을 설득, 탈옥한 뒤 후원자인 정안평(鄭安平)의 집에 은거하며 이름을 장록(張祿)이라 바꾸었다. 그리고 망명할 기회만 노리고 있던 중 때마침 진(秦)나라에서 사신이 왔다. 정안평은 숙소로 은밀히 사신 왕계(王稽)를 찾아가 장록을 추천했다. 어렵사리 장록을 진나라에 데려온 왕계는 소양왕(昭襄王)에게 이렇게 소개했다. "전하, 위나라의 장록 선생은 천하의 외교가이옵니다. 선생은 진나라의 정치를 평하여 '알을 쌓아 놓은 것보다 위태롭다.(危於累卵)'며 선생을 기용하면 국태민안(國泰民安)할 것이라고 하였사옵니다." 소양왕은 이 불손한 손님을 당장 내치고 싶었지만 인재가 아쉬운 전국시대이므로 일단 그를 말석에 앉혔다. 그후 范雎[張祿]은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으로 그의 진가를 발휘했다. 【동의어】위여누란(危如累卵)
눌언민행(訥言敏行) 말은 둔하게 하고 행동은 민첩해야 한다.
능소능대(能小能大) 작은 일도 큰 일도 능히 해낼 수 있음.
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 글씨에 능한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
                                  
   [출전]《唐書》〈歐陽詢傳〉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 곧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는데 종이나 붓 따위의 재료 또는 도구를 가리는 사람이라면 서화의 달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 당나라는 중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나라의 하나였다. 당시 서예의 달인으로는 당초 사대가(唐初四大家)로 꼽혔던 우세남(虞世南)ㅗ저수량(?遂良)ㅗ유공권(柳公權)ㅗ구양순(歐陽詢) 등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의 서체를 배워 독특하고 힘찬 솔경체(率更體)를 이룬 구양순이 유명한데 그는 글씨를 쓸 때 붓이나 종이를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저수량은 붓이나 먹이 좋지 않으면 글씨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날, 그 저수량이 우세남에게 물었다. "내 글씨와 구양순의 글씨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낫소?" 우세남은 이렇게 대답했다. "구양순은 '붓이나 종이를 가리지 않으면서도[不擇筆紙]' 마음대로 글씨를 쓸 수 있었다[能書]고 하오. 그러니 그대는 아무래도 구양순을 따르지 못할 것 같소." 이 말에는 저수량도 두 손을 들었다고 한다. 또 '능서불택필'은 ①《왕긍당필진(王肯堂筆塵)》과 ②주현종(周顯宗)의 《논서(論書)》에 각각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①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 속설은 구양순까지이고, 그 이후의 사람들은 붓이나 종이를 문젯거리로 삼게 되었다." ②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니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이는 통설이라고 할 수 없다. 행서(行書)와 초서(草書)를 제외한 해서(楷書)ㅗ전서(篆書)ㅗ예서(隸書)를 쓰는 경우는 붓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붓을 가리지 않을 수 없다."
니취(泥醉) 술에 몹시 취해 진흙과 같이 흐느적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