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항일련군로전사 리민의 전설적 이야기4>방송듣기 


당창건 100년 특별 기획

'동북항일련군 로전사 리민의 전설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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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중국공산당은 창당 100년을 맞이하게 되였습니다. 1921년부터 2021년까지 백년은 중국공산당이 피와 땀, 눈물과 용기, 지혜와 힘으로 장식해온 100년이였습니다. 중국공산당은 100년간 가시밭길에서 온갖 간난신고를 이겨내며50여 명에서 9천여만 명의 당원을 가진 세계 제1당으로 성장하였으며 전국 각 민족 인민을 이끌고 민족독립과 인민해방을 쟁취하고 국가의 부강과 인민의 행복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중화민족이 일떠서고, 유족해지고 강대해지는 위대한 도약을 이룩함으로써 세계가 주목하는 대 서사시를 썼습니다.

중화민족 대가족의 일원으로서 100년 동안 조선민족은 중국공산당의 령도하에 항일전쟁, 해방전쟁, 항미원조와 새중국 건설과정에서 피땀을 흘리면서 불멸의 공훈을 세웠습니다.

동북항일련군의  열악한 전쟁년대로부터 새중국건설의 번영창성을 지켜봐온 조선족 로전사, 로공산당원의 영웅적 업적을 세인들에게 알리고저 흑룡강조선어방송은 창당 100년을 맞이하면서 <동북항일련군 로전사 리민의 전설적 이야기>  특별기획 칼럼 련재를 통해 혁명의 선구자를 기리고 력사에 길이 빛나게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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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리민동지의 구술에 의거해 작성한 《동북항일련군 로전사 리민의 전설적 이야기》 제2회: <참군하여 항일하다> 두번째 부분을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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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련일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얀색으로 뒤덮인1937년 12월의 어느날, 경전군 단장은 부대를 이끌고 피복공장에 20여명 부상자를 데리고 왔다. 적들의 포위토벌을 피하기 위하여 경단장은 일부러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이런 날씨에는 적들이 출동을 꺼려하는 원인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큰눈에 발자국을 감출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상자들외에 왕요균 의관과 배의병도 있었다. 사실 배의병도 발가락에 부상을 입은 경상자였다. 이날로부터 피복공장은 림시병원으로 되여버렸고 동지들은 부상병들의 간호를 담당하게 되였다.

        왕요균 의관의 지도와 배성춘 언니의 지휘하에 다들 긴장한 의료작업에 뛰여들었다. 약품부족으로 일부 사람들은 산에 올라 마른덩굴, 동청 등 야생약초를 캐다 얼음물을 녹여 약재를 달이고 또 두사람씩 번갈아 밥을 지었으며 나머지 녀성동지들은 매일 보초를 서고 망을 보며 환자를 돌보았다. 왕요균 의관은 더욱 밤낮없이 바삐 보냈다. 부상자 응급구조는 물론 수술,치료외에도 피복공장 동지들의 간호수업을 맡아했으며 짬짬히 여가시간을 리용해 문화지식을 가르쳤다. 그의 가르침 덕분에 동지들은 많은 문화지식과 의료지식을 장악했다.

        음력섣달에 들어서 제일 추운 “삼구” “사구” 절기였다. 하늘에서는 거위털같은 흰눈이 펑펑 쏟아지고 서북풍이 쌩쌩 기승을 부리며 휘몰아쳤다. 예상밖으로 적들은 이런 날씨에 겨울철 “토벌”을 감행한 것이다.

어느날 아침, 망을 보던 보초병 리원해동지가 급하게 달려와 적들이 산속에 들어왔다는 긴급정보를 전하였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벌써 초소쪽으로부터 총소리가 들려왔다. 피복공장은 긴급 전투준비를 마치고 즉시 부상자들의 철수를 조직하였다.

        눈이 두텁게 쌓인데다 산이 가파롭고 신발이 미끄러워 녀성동지들은 아예 신발을 벗어던지고 양말바람으로 산에 올랐다. 부상자들을 피신시킨지 얼마 안되여 초소 방향의 총소리도 잦아들면서 잇달아 산아래쪽으로 부터 환호성이 들려왔다. 

“적들을 물리쳤어요, 어서 내려와요!”

“와우! 우리가 승리했어!”

동지들은 환호를 지르며 부상자들을 다시 부축하여 산아래 거처로 돌아왔다.

음력설을 며칠 앞두고 거둔 승리라 명절의 경사스런 분위기를 더해줬다.다들 기분좋게 설을 보낼 생각을 하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아무리 절약해도 숙영지에는 식량과 약품이 모두 바닥난 상태였다.올해 설은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하며 모두 마음이 초조해졌다. 령도들은 부상자들 몰래 림시회의를 열어 함께 방법을 모색해 난관을 헤쳐나가자고 하였다. 회의 끝난후 어떤이는 다람쥐 굴을 파고 어떤이는 쌓인 눈을 헤쳐 풀뿌리나 나무뿌리를 캐왔다. 다람쥐 굴에서 얻어 온 잣이며 캐온 풀뿌리와 나무뿌리는 모두 부상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렇게 한들 얼마 버틸수없는 상황이였다. 하여 피복공장에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산밖으로 나가 식량을 구하려 하였다. 때마침 앞초소의 장처장이 지방교통원 조홍생을 데리고 반자루 남짓한 옥수수쌀과 강낭콩을 가져왔다. 그야말로 목숨을 구해줄 가뭄의  단비였다. 동지들은 감개무량해하며 그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였다. 조홍생은 하루밤 묵고 이튿날 조용히 산을 떠났다.

며칠후 6군4사 하진화사장과 경전군단장이 밀가루 한포대와 언배 반주머니 외에도 소금, 콩 등 위문품을 보내왔다. 이처럼 귀한 위문품에 동지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믐날밤,숙영지에서는 련환모임을 가졌다. 모두 앞다투어 표연하려 하였다. 부상자들도 노래를 불렀고 어떤이는 경극대목을 무반주로 부르기도 하였다. 리계란 등 녀전사들은 련이어 여러곡의 노래를 불렀다.

김지도원은 다리부상으로 걸음걸이가 불편했지만 지팡이를 짚고 최석천의 노래 “중한공농련합하라” 를 목청껏 불렀다.

즐거운 노래와 웃음소리가 깊은 밤까지 이어졌다. 적막했던 산림이 항일전사들의 뜨거운 정과 환락으로 들끓었다. 

음력설후 부상자들은 모두 전방에 돌아가고 숙영지에는 치료 중인 부상자 10여명만 남았다. 나와 피복공장의 동지들은 계속해서 왕의관의 지도하에 중상자들을 돌봤다. 김지도원도 계속해서 문화지식을 가르쳤다.

1938년3월15일  낮이 짧고 밤이 긴 절기였다. 동틀무렵, 나와 김백문 동지는 이미 옥수수죽을 써 놓았다. 이때 밤 보초를 서던 리계란 동지가 급히 달려와 보고하였다. “보고합니다. 저 앞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요!” 보고를 접한 배성춘 언니는 즉시 행동해 부상자들을 북산으로 철수시키라는 긴급명령을 내리였다.

그리고는 앞장서 숙영지에서 뛰쳐나가 전투를 지휘하였다. 왕의관 등 동지들은 즉각 부상자 철퇴를 조직하였다. 나와 김백문 동지는 중상을 입은 김지도원을 부축해 문을 나섰다. 김지도원은 허벅지 부상으로 피를 많이 흘려 몸이 매우 쇠약해진 상태였다. 문을 나선 후 나는 김백문동지에게 김지도원을 맡기고 숙영지로 다시 달려갔다. 동지들이 아직 먹지 못한 옥수수죽을 가지러 갔다. 이미 두차례의 전투를 겪어 서인지 큰 두려움은 없었다. 그전처럼 동지들이 적들을 물리칠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을 담는사이에 밖의 총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이때 누군가 나의 엉덩이를 세게 때렸다. 뒤돌아보니 배성춘 언니가 노발대발하며 내 등뒤에 서 있었다.

“죽고싶어서 그래, 적들이 문앞까지 막아섰어!빨리 뛰쳐나가”

그의 말을 들은 나는 반통 남짓한 죽을 들고 순순히 언니의 뒤를 따라나섰다.

“리동무 명심해 들어. 적들의 기관총 소리가 지나가면 인츰 기회를 타서 뛰여나가”

배성춘 언니는 전투경험이 많은지라 적들의 화력을 따돌리기 위해 먼저 뛰쳐나갔다. 기관총 소리가 빗발치고 총탄에 눈꽃이 흩날렸다. 배성춘 언니가 뛰쳐나간후 나는 몇번이고 시도를 하였으나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동지들은 이미 다 뛰쳐나갔는데 어쩌면 좋을까고 애타하고 있을 때 웬일인지 총소리가 멎었다. 이때가 기회라 생각한 나는 반통의 옥수수죽을 들고 막 뛰쳐나갔다. 하지만 죽이 무겁고 또 긴장한 나머지 얼마 못가 미끄러 넘어져 죽마저 쏟아 버렸다. 나는 서둘러 일어나 계속 북산으로 향해 뛰여갔다. 산속의 나무들은 이미 집을 짓고 땔감으로 사용해서 몸을 감출만한 곳이 없었다.목숨을 건지려면 필사적으로 뛰어야만 하였다. 날은 이미 밝고 나는 강물을 건너 산으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생포해,생포!” 

갑자기 적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정말이지 한방에 날려보내고 싶었지만 총이 없는지라 오로지 필사적으로 뛰는 수 밖에 없었다. 

적들의 손아귀에 잡혀서는 절대 안된다.뛰여 뛰여!

  귓가에서 울부짓는 바람소리에서도 적들이 추격하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듯 싶었다. 머리를 휙 돌려보니 한놈이 외투를 벗어던지고 바싹 따라 왔다. 밀림이 곧 눈앞이다. 밀림속으로 들어만 가면 따돌리기 쉬워질텐데. 뒤에 쫓아오는 적들이 점점 가까워 진다. 추격병의 거친 숨소리마저 들리는듯하였다. 바로 이때 총소리와 함께 뒤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쫓고 있던 적이 총에 맞아 쓰러진것이었다.

배성춘 언니가 나무뒤에 숨어서 우리를 엄호해준것이였다.

우리는 북산의 돌바위에서 부상자들과 합류했다. 장처장의 부대도 인츰 달려와 지원하였다. 우리는 유리한 지형을 차지해 끝내 적들을 물리쳤다.

한참 지나니 피복공장 방향으로 부터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여올랐다. 틀림없이 적들이 피복공장에 불을 질러놓은것이다. 동지들은 주먹을 불끈쥐며 당장 내려가 적들과 결사적으로 싸우고 싶은 심정이였다.

피복공장의 피습은 적에게 체포되여 배신한 교통원 조홍생이 날이 어두운 틈을 타 적들을 데리고 우리의 초소를 에돌아  인적이 없는 오솔길로 산에 오른것이였다. 

이번 전투에서 하씨아줌마와 한씨언니가 총탄에 맞아 희생되였고 하지청동지는 부상을 입고 리계란동지는 부상자들을 엄호하기 위해 탄알이 떨어질때까지 싸우다 적들에게 붙잡혔다. 리계란동지는 체포된후 탕원현 일본수비대와 헌병대에 갇혀 갖은 고문을 당했다. 두손은 꼬챙이에 찔려 심하게 변형되였지만 끝까지 굴복하지 않아 탕원현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후 류지민동지 등과 함께 할빈 도리 감옥에 압송되여 유기징역 10년을 언도 받았다. 장세신과 리사부도 부상자들의 철수를 엄호할때 적들의 총에 맞아 영용하게 희생되였다.

처절한 전투가 끝난후 많은 부상자들을 배치할 문제가 우리 앞에 놓였다. 부상자들을 이끌고 눈길을 가다가 적들이 발자국을 따라 추적해오면 그 후과를 상상할수조차 없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모두들 막연해 있을때 역시 배성춘 언니와 장처장이 네개돌산속의 동굴을 생각해냈다.

네개 돌산에는 큰 수림이 없고 듬성듬성 관목과 마른 풀만 있다. 또 돌산이여서  눈이 쌓이지 않아 발자국을 남길 걱정이 없다.

높고 험한 네개돌산은 소흥안령 남쪽비탈에 위치해 있었으며 산비탈에는 몇개의 작은 산굴이 있었다. 그중에서 큰 것이 30여평방메터에 달하고 입구는 해빛이 잘 드는 방향으로 향해 있었다. 망망한 빙설속에서 이렇게 편히 몸을 맡길 곳을 찾으니 그야말로 하늘이 우리를 돕는것 같았다. 동지들은 나무가지를 찾아 동굴에 깔고 부상자들을 동굴안쪽에 안치하고 나머지 동지들은 동굴밖에서 숙영하였다.

부상병을 안치한후 왕요균 의관은 약상자를 동굴 입구에 놓고는 긴장한 작업을 시작하였다. 배성춘 언니는 서둘러 사람을 보내 땔감 구하고 물을 길러오게 하고 밥을 지었다. 나는 정상에 서서 송화강과 목단강 및 주변의 경치를 바라보며 리승할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산에 오르던 정경이 떠올랐다. 생사를 모르는 계란 언니를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리승할아버지, 계란언니, 장세신 선생님 지금 어디에 계시나요…


동북항일련군 전사 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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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으로 흑룡강조선어방송 당창건 100년 특별 기획 련재 '동북항일련군 로전사 리민의 전설적 이야기' 네번째 부분을 마칩니다. 담주 이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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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节目由黑龙江朝鲜语广播制作

内容原文选自由李敏口述,李江、刘颖整理的书籍《亲历东北抗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