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항일련군로전사 리민의 전설적 이야기13>방송듣기

당창건 100년 특별 기획
'동북항일련군 로전사 리민의 전설적 이야기'
 介绍.jpg
         2021년, 중국공산당은 창당 100년을 맞이하게 되였습니다. 1921년부터 2021년까지 백년은 중국공산당이 피와 땀, 눈물과 용기, 지혜와 힘으로 장식해온 100년이였습니다. 중국공산당은 100년간 가시밭길에서 온갖 간난신고를 이겨내며 50여 명에서 9천여만 명의 당원을 가진 세계 제1당으로 성장하였으며 전국 각 민족 인민을 이끌고 민족독립과 인민해방을 쟁취하고 국가의 부강과 인민의 행복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중화민족이 일떠서고, 유족해지고 강대해지는 위대한 도약을 이룩함으로써 세계가 주목하는 대 서사시를 썼습니다.
 중화민족 대가족의 일원으로서 100년 동안 조선민족은 중국공산당의 령도하에 항일전쟁, 해방전쟁, 항미원조와 새중국 건설과정에서 피땀을 흘리면서 불멸의 공훈을 세웠습니다.
 동북항일련군의  열악한 전쟁년대로부터 새중국건설의 번영창성을 지켜봐온 조선족 로전사, 로공산당원의 영웅적 업적을 세인들에게 알리고저 흑룡강조선어방송은 창당 100년을 맞이하면서 <동북항일련군 로전사 리민의 전설적 이야기>  특별기획 칼럼 련재를 통해 혁명의 선구자를 기리고 력사에 길이 빛나게 하려고 합니다.
---------------------------
        오늘도 리민동지의 구술에 의거해 작성한 《동북항일련군 로전사 리민의 전설적 이야기》련재 제5부: <반격전을 위해 귀국길에 오르다> 를 보내드리겠습니다.
---------------------------
        그토록 기대하던 대반격이 시작됐다.
        8월8일 자정의 종소리가 울리자 쏘련원동군 총사령 와시레브스끼 원수가 통솔하는 백50여만 원동 홍군이 강대한 우세로 일본관동군을 향한 전면적 진격을 시작해 최후의 결전을 펼쳤다. 
 
微信图片_20210831160748.jpg
《风雪征程——东北抗日联军战士李敏回忆录》插图

        8월9일 한시, 쏘련 원동 제1방면군은 한개영과 변방부대 각지대로 구성된 강유력한 선견 부대를 파견해 비밀리에 국경선을 넘어 일본군의 국경진지를 향해 진격을 펼쳤다. 9일 8시30분, 전면 진격이 시작됐다. 
        쏘련군이 동북으로 진격할때 항일련군 교도려는 원동 세개방면군의 군사행동을 적극 협조했다.
 8일 항일련군 교도려는 주둔지에서 동북으로 반격전을 펼치고 쏘련군을 협조해 일본관동군을 소멸할데 관한 동원대회를 소집했다. 
        주보중 총지휘는 동원보고에서 전체 장병들이 일본침략자를 소멸하고 중국인민항일전쟁의 최후 승리를 쟁취하기위해 영용히 싸울 것을 호소했다. 
        항일련군 교도려의 장병들은 5년간의 정치학습과 군사훈련을 거쳐 정치를 알고 전술을 장악했으며 전투력이 강했다.  많은 항일련군 장병들은 쏘련홍군의 동북 출병 전투에 직접 참가했다. 그중 백여명은 후바이갈방면군으로 가 선견부대에 참가해 특수 임무를 수행했다.  항일련군 장병들로 구성된 선견부대는 장기적인 대일작전 경험이 있고 지리환경에 익숙했기에 여러가지 특수 임무를 원만히 완수했다. 이는 쏘련홍군이 동북 침략 일본군을 단시간내 신속히 소멸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발휘했다. 
        동북항일련군 교도려는 비록 전략적 수요로 쏘련 원동지역으로 가 정비 훈련을 진행했지만 일부전사들은 여전히 동북지역에 남아 항일을 견지하면서 갖은 고난을 겪으며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웠다. 
        이들은 적들의 점령구에서 선혈과 생명으로 조국의 려명을 맞이했다. 
        왕영창은 확고한 혁명자로서 소박하고 유능했다. 우리가 쏘련에 간후 그는 계속 동북에 남아 항일투쟁을 견지했다. 
        동북지역에서 항일투쟁을 견지한 투사들중에는 또 한명의 전기적 인물이 있는데 바로 유명한 항일 장령 우천방이다. 
 微信图片_20210901141336.jpg
《风雪征程——东北抗日联军战士李敏回忆录》插图

        우천방은 1928년 청화대학 경제학부에 입학했으며 1931년5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청화지부 서기를 담임했다.  1932년 봄, 우천방은 장갑주, 장문조, 장청림, 정병문, 하상지 등 5명 동북적 학생들과 고향으로 돌아오는 비장한 로정에 올랐다. 
        중공만주성위의 지시하에 5월16일 파언현 칠마가자에서 중공무장항일의 첫 포성을 울린 “동북민중항일의용군 강북독립사”를 설립하고 장갑주가 총지휘, 우천방이 특파원 및 교통 정보참 책임자를 담임했다.
 1933년3월, 우천방은 만주성위의 파견을 받고 치치할시에 가 만주성위 룡강특별지부를 설립하고 지부서기를 담임했다.
         1933년10월부터 우천방은 부금으로 가 당지에 잠복해 있던 장갑주와 함께 중공 비밀조직을 건립하며 부금 두도림자 경찰서장 리경음을 설득해 총 87자루를 가지고 항일련군 독립사에 참가하게 하며 송화강하류 여러 항일련군부대에 군사정보와 물자원조를 제공했다. 
         1937년, 우천방은 동북항일련군 독립사에 참가했다. 독립사는 후에 제11군으로 개편되며 우천방은 선후로 수군학교 교육장, 11군1사 정치부 주임 등 직무를 담임하고 부대를 인솔해 수릉 등 지역에서 유격활동을 전개했다.  
         1938년 겨울, 우천방은 리조린이 령도하는 원정대를 따라 부금, 보청에서 출발해 해륜일대로 가 유격전을 전개했다.  1941년, 동북항일련군 제3로군이 쏘련경내에 진입해 정돈훈련을 하게 되는데 우방천은 제3로군 특파원으로 제6지대를 인솔해 국내에 남았다.  우천방은 제6지대를 인솔해 해륜, 수릉, 북안, 경성일대에서 비밀리에 구국회를 발전시키고 항일근거지를 건립하며 일본군, 괴뢰군과 죽을 각오로 전투를 벌렸다.
 우방천은 《옥문탈출기》란 책에서 이렇게 썼다. 
         “동북은 나의 고향이다, 나는 조국을 사랑하고 동북을 사랑하며 고향을 사랑하고 망망림해의 흥안령을 사랑한다. 적들이 아무리 흉포하더라도 항일투쟁의 불길은 억제할수 없을 것이다. 나는 고향땅에 시체를 묻을 것이며 절대 동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微信图片_202108311607491.jpg
《风雪征程——东北抗日联军战士李敏回忆录》插图

         1944년12월19일, 한간의 밀고로 우천방과 손국동, 두희강, 우란각, 류상, 왕명덕이 수릉현에서 적들에게 체포됐다. 우천방은 선후로 괴뢰군 경안경무과 류치장과  괴뢰군 북안성경무청 특무분실 비밀감옥에 수감됐다. 일본놈들의 잔혹한 고문과 권항에 맞서 우천방은 풍부한 투쟁경험과 슬기로 굴하지 않고 적들과 투쟁을 진행했다.  
         1945년7월12일, 우천방은 항일련군전사 조충량과 함께 일본 옥졸을 죽이고 탈옥에 성공하며 인민군중들의 엄호하에 위험에서 벗어 났다. 
         1945년8월15일, 우천방은 눌하 로래촌에서 일본 투항 소식을 접한후 눌하현성에서 동북항일련군 3로군 선전부 자위대를 조직하며 항일전쟁의 최후 승리를 맞이했다.
         1945년 “8.15” 항일전쟁승리후 우방천은 다시 혁명사업에 복귀하며 선후로 중장철도 호로군 총감, 흑룡강성군구 부사령원, 흑룡강성참의회 의장, 흑룡강성인민법원 원장, 흑룡강성군사부장,  흑룡강성군구 부정위, 사령원 등 직무를 력임했다. 
         려명전 가장 어두울때, 수많은 동지들이 감옥에서 최후의 투쟁을 했다.
         지난날 나를 데리고 산에 오른 류지민 언니, 그리고 나와 함께 부대에 갔던 리계란도 괴뢰군의 감옥에서 갖은 혹형을 받았지만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다. 
         손국동, 우천방, 두희강, 조문유, 류충민, 왕영창, 류지민, 리계란 등 수많은 동지들이 굴하지 않고 동북에서 끝까지 항일투쟁을 견지해 14년간의 항일전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조국을 떠난 항일련군 전사들은 더없이 동북이 그리워 났다. 그곳엔 적들의 통치하에 암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우리의 고향사람들이 있었다. 언제면 고향으로 쳐들어가 동북의 광복을 맞이 할가?

 微信图片_20210901143445.jpg
《风雪征程——东北抗日联军战士李敏回忆录》插图

         그날이 드디어 왔다!
         쏘련홍군의 파죽지세의 공격하에 일본관동군은 신속히 붕괴됐다. 비록 일부 지역에서 일본군이 완강하게 저항했지만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1945년8월15일, 일본은 드디어 무조건 투항을 선포했다. 
         일본 투항소식이 전해지자 교도려는 환희로 들끓었다. 우리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선혈을 흘리고 목숨을 바쳐 드디어 일본침략자를 물리치고 삼천만 동북인민들이 망국노의 신세에서 벗어났다.
 微信图片_20210901151435.jpg
《风雪征程——东北抗日联军战士李敏回忆录》插图

         쏘련홍군이 동북으로 전면 출병한 후 항일련군 장병들은 3차에 나뉘어 귀국했다. 제1진은 7월의 안내와 정찰부대였고 제2진은 8월8일 낙하병부대였다. 제3진은 4개대로 나뉘었는데 동북을 신속히 접수하고 병력을 모아 수립하기 위한 인원들이 였다. 
         그중 제1대는 리조린, 왕효명, 강신태 등 백70여명으로 할빈, 길림, 연변 등지로 향했다. 제2대는 팽시로가 인솔해 가목사지역으로 갔고 제3대는 주보중, 풍중운이 인솔해 각기 장춘과 심양으로 갔으며 제4대는 왕명귀, 왕균, 진뢰, 범덕림, 동숭빈이 인솔해 각기 치치할, 수화, 대련 등지로 갔다.  4진에 나뉘어 57개 전략적 요점 과 도시로 갔다. 
        당시 국내의 복잡한 투쟁환경을 고려해 귀국시 동북항일련군 장병들은 모두 가짜 이름을 사용하도록 했다. 주보중은 황소원이란 가명을 사용했고 장수전은 리조린으로, 최석천은 최용건, 풍중운은 장대천으로 이름을 바꿨다.  나는 리민이라 이름을 바꿨는데 이 이름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1진, 2진의 동지들이 륙속 떠나 갔다. 명령을 대기하고 있는 제3진 전사들은 마음이 조급했다. 모두들 하루빨리 조국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기다리던 그날이 드디어 왔다. 
         1945년9월11일, 우리는 차를 타고 북야영에서 하바롭스크로 갔다. 떠날때가 되자 다들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다. 동지들은 오직 하나의 념원-귀국하는 것이 였다. 하루빨리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드디어 우리는 소형 군용기를 타고 조국으로 향했다. 
         함께 귀국한 인원들로는 진뢰, 장광적, 왕균, 리민, 리점춘, 마귀흥, 주학성, 김국상, 장자영, 마운봉, 진명 등 이였다. 
         비행기에는 20명이 탑승했다. 항일련군 귀국인원외에 쏘련군관 5명도 함께 있었다. 비행기 엔진소리로 우리는 서로의 말소리를 들을수 없었지만 얼굴에는 희열이 넘쳐흘렀다. 비행기가 흑룡강 상공에 이르자 우리는 얼굴을 창에 붙이고 아래를 내려 보았다. 흑룡강은 은색의 옥대(玉带)마냥 가을의 햇볕에 반짝거렸다. 
         아, 흑룡강을 넘으면 우리 조국이구나, 우리가 돌아왔다.
         우리는 처음 흑룡강을 건널때 적들의 추격에 백복후 퇀장과 두경당 지도원의 인솔하에 희생을 각오하던 그 정경을 잊을 수 없다.  좁다란 떼목에 엎드려 세번째로 흑룡강을 건널때 거센 파도에 휩쓸려 죽을번 했던 것도 잊을 수 없다. 
         처음 흑룡강을 건넜던 전우들은 대부분 이미 희생됐다. 그들은 영원히 흑토에, 산림속에 잠들었다. 그들은 조국 강산의 광복의 날을 보지 못했다. 
         비행기는 소흥안령을 날아 넘었다. 화염같고 아침노을 같은 단풍들이 한눈에 안겨온다. 비록 침략자들의 유린을 당했지만 우리의 조국, 우리의 동북은 여전히 그토록 아름답고 그토록 풍요롭고 그토록 광활했다. 이땅을 위해 우리 항일련군 전사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수 있었다. 
         오후 2시경, 비행기는 북안공항에 착륙했고 우리는 동북의 땅을 밟았다.  조국이여, 우리가 돌아왔다!

동북항일련군 전사 리민
--------------------------
        이것으로 흑룡강조선어방송 당창건 100년 특별 기획 련재 '동북항일련군 로전사 리민의 전설적 이야기' 열세번째 부분을 마칩니다. 다음주 이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李敏.jpg

本节目由黑龙江朝鲜语广播制作
内容原文选自由李敏口述,李江、刘颖整理的书籍《亲历东北抗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