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항일련군로전사 리민의 전설적 이야기14>방송듣기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특별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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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기념하여 저희 흑룡강조선어방송은 리민동지의 구술에 의한 《동북항일련군 로전사 리민의 전설적 이야기》 특별기획 칼럼 련재를 총 13회에 걸쳐 방송을 했습니다.
 이번 특별기획련재를 마무리하면서 본방송 현국화기자가 리민동지의 회고록을 정리한 작가들을 만나 리민동지 회고록 집필과정을 알아보았으며 리민동지의 아들 진효봉씨를 만나 그의 맘속의 어머니 리민의 형상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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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고록 “동북항전을 직접 겪다”는 리민동지가 93세때, 그의 구술을 바탕으로 현 흑룡강성항일련군력사문화연구원 리강 비서장과  류영 부비서장이 공동으로 수집 정리했습니다.
        리강비서장은 2010년11월부터 동북항일련군 로전사, 흑룡강성정협 전직부주석 리민동지의 비서로 사업했습니다. 
        그럼 리강비서장에 대한 본 방송 현국화기자의 인터뷰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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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风雪征程——东北抗日联军战士李敏回忆录》插图

현국화: 안녕하세요? 흑룡강조선어방송 현국화기자입니다. 리민동지의 회고록의 주요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采访音频压低混播)
취재내용: 리민동지의 회고록은 2017년 저와 류영녀사가 함께 완성한 책입니다. 책에서는 리민동지의 출생으로부터 12살 어린나이에 동북항일련군에 참가해 항전승리를 취득하는 과정을 생동하게 그려냄으로써 혁명교육에서 적극적인 작용을 일으켰습니다.
현국화: 회고록을 편찬하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시지요.
 (采访音频压低混播)
취재내용: 리민동지의 고상한 품성, 끈질긴 정신, 숭고한 리상, 확고한 신념이 저를 깊이 감화시켰습니다. 전에는 동북항일련군에 대해 료해가 깊지 못했지만 리민동지 신변에서 일하면서 많은 것을 체득했고 기본적인 력사 맥락을 장악했습니다. 리민동지는 리직후 줄곧 적극적으로 항일련군의 력사를 선전하고 동북항일련군의 정신을 고양했기에 저의 펜을 통해 로전사가 직접 겪은 경험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 영광이였습니다.
현국화: 회고록을 정리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에 대해 소개해주시지요.
(采访音频压低混播)
취재내용: 사실 저한테는 모든 부분이 중요하고 인상이 깊었습니다. 가장 감명을 받은 부분이라면 동북항일련군의 간고한 투쟁력사와 리민동지의 숭고한  정신, 당에 대한 충성심과 일본군에 대한 분노를 가장 잘 반영한 1938년 장가요 전투가 아닐까 싶습니다.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던 그해 겨울 배성춘 언니가 체포된후 눈속에 홀로 파묻혀 있다 악몽같은 2박3일을 보내는 부분입니다. 당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다 평소에 그토록 징그러워했던 쥐를 잡아 목숨을 부지했던 부분입니다. 14살 어린 녀자아이에겐 너무나 참혹한 경지였던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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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风雪征程——东北抗日联军战士李敏回忆录》插图

현국화: 회고록이 편찬, 출판된 의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采访音频压低混播)
취재내용: 의의라면 우리 청소년들이 휘황한 력사를 명기하기 바랍니다. 첫째는 항일전쟁의 승리는 전적으로 중국공산당의 령도하에서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동북항일련군의 불굴의 혁명정신을 학습하고 전승하도록 합니다. 더우기 청소년들로 하여금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행복은 쉽게 얻은 것이 아니며 공산당이 없으면 새중국도 없으며 수많은 혁명렬사들의 고군분투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의 행복한 생활도 없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것입니다.
현국화: 리민동지의 비서로 오래동안 사업해온 최측근으로서 리민동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싶습니까?
 (采访音频压低混播)
취재내용: 리민동지는 선량하고 겸손합니다. 또한 근검절약하고 자신에 대해서는 요구가 아주 높고 타인한테는 관대한 고품격을 가졌습니다. 리민동지는 항상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으며 누구나 친절하게 대해줬습니다. 할빈시제1공구공장당위서기로 있을 때에도 로임은 거의  공장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데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자신한테는 1전한푼 허투로 쓰는 법이 없었습니다. 리민동지는 휴식일이란 개념조차 없이 오로지 사업에만  열중했습니다. 매일 아침 5시면 출근했다고 합니다. 당이 맡겨준 임무를 성실히 완성해야 한다는 높은 각오로 사업에 임해 좋은 성적을 냈습니다. 또한 당시 경위원들보고 편벽한 곳에서 온 사람일 수록 꼭 문을 열어줘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해결해 주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자신은 항상 근검절약했습니다. 어느날 제가 리민동지를 찾으러 갔다가 우연히 혁띠를 꿰매는 것을 봤습니다. 그 혁띠를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났습니다. 이미 낡을때로 낡아 있었고 이미 끊어져 꿰맨 흔적이 보였으며 또 동강이 난 곳을 꿰매고 있었습니다. 그후로도 그는 그 혁띠를 반년쯤 더 사용했습니다. 후에 제가 보다 못해 혁띠를 사드렸더니 끝내 돈 100원을 넘겨줬습니다. 남의 것은 공짜로 가지는 법이 없는 리민동지는 돌아가실때까지도 항상 뭐나 아껴써 생활하며 어려운 사람을 도와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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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起玄国花、陈晓峰、李江、刘颖

현국화: 동북항일련군 로전사 리계란의 딸이자 리민동지 회고록을 함께 수집 정리한 류영 동북항일련군 력사문화연구회 부비서장과의 인터뷰에서 동북항일련군의 간고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采访音频压低混播)
취재내용: 당시 북만림시성위 지하교통원 리승 할아버지와 부녀구국회 리계란의 인솔하에 리민동지는 와다강, 서락하, 한가위자를 거쳐 동북인민혁명군 제6군의 후방 밀영에 도착 했던 것입니다. 동북인민혁명군 제6군 제4사 정치부 주임이였던 오옥광은 어린 리민동지를 보고 이마를 찌푸리며 받지 않으려 했습니다. 리승할아버지와 저희 어머니의 청구하에 오주임은 리민동지를 받아들이고 리민동지가 어린 점을 감안해 취사일을 하게 했습니다. 리민동지는 12살 어린나이였음에도 아주 굳세고 령리한 어린이였습니다. 이렇게 되여 리민동지는 부대생활을 시작했으며 부대가 집이나 마찬가지 였습니다.
         저는 2008년 리민동지 신변에 와 사업하면서  리민동지의 력사를 기록해 후대들에게 남겨주고 싶었습니다. 이책이 후대들에게 계시와 교육을 줌으로써 우리 후대들이 력사를 잊지 말고 선렬들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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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동북항일련군의 노래 <중한민족 련합하여 항일하자>를 들으시겠습니다. 이 노래는 저명한 항일명장 양정우동지가 작사한것입니다. 본방송 김룡수음악편집이 우리 말로 번역하여 불러드립니다.
中韩民族联合抗日歌[3분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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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국화: 리민동지의 회고록을 수집 정리한 리강, 류영씨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기자는 리민동지의 아들 진효봉씨를 만났습니다. 진효봉씨는 현재 흑룡강성 동북항일련군 력사문화연구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어머니 리민동지를 비롯한 동북항일련군 정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采访音频压低混播)
취재내용: 네 저희 어머니는 당시 제일 어린 조선족 녀전사였습니다. 그때 많은 조선족 항일련군 전사들이 계셨죠. 저는 항상 어머니의 동북항일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고 용감하게 국난을 해결하는 애국주의 정신, 용감하고 완강하며 앞사람이 쓰러지면 뒤사람이 이어나가는 용감한 전투정신, 절개를 굳게 지키고 목숨을 바치는 불굴의 희생정신, 동고동락하며 단결해 외적의 침략에 항거하는 국제주의 정신! 이것이 바로 동북항일련군의 정신입니다.
         동북항일련군 정신이야 말로 저희 어머님을 비롯한 항일련군전사들이 우리 후대들에게 남겨준 보귀한 정신적 재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공산당을 굳게 믿고 곤난을 극복하고 용감히 희생하는 그들의 정신을 후대들이 계승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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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风雪征程——东北抗日联军战士李敏回忆录》插图

현국화: 전에 중소학 교재에는 “8년항전”이라고 씌여있었는데요. 2017년1월3일 정식으로 중소학 교재에 “14년 항전”으로 수정이 됐습니다. 당시 리민동지는 이 소식을 듣고 한잠도  잘 수 없었다했지요?
(采访音频压低混播)
취재내용: 저희 어머니는 어린나이에 참군했고 또한 행운스럽게 살아남은 생존자의 한사람으로써 적극적인 추동역할을 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동북삼성의 정협부문 및 전국정협위원, 전국인대 대표들과 함께 여러차례 전국정협과 전국인대에 제안을 제출했습니다. 2017년 끝내 교육부가 중소학교 교재를 수정하기로 한 문건이 내려왔습니다. 당시 저희 어머니는 중소학교 교재 수정 소식을 접하고 엄청 뿌듯해했습니다. 불완정한 력사를 우리 후대들에게 알려줄 수 없으며 중국공산당이 령도한 동북항일의 진실한 력사를 후대들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현국화: 아들 진효봉씨에게 리민동지는 어떤 어머니였나요?
 (采访音频压低混播)
취재내용: 저희 어머니는 락관적이고 활달하고 모성애가 넘치는 사람이였습니다. 조선족인 리유인지 노래 잘하고 춤을 잘 췄습니다. 매일 잠들기 전이면 동북항일련군의 이야기를 들려줬구요. 항일 노래도 많이 불러줬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도 노래부르기를 참 좋아합니다. 어머니는 자애로운 분이지만 자식에 대한 요구가 아주 엄격했습니다. 제가 입대할때도 어머니는 저를 제일 어렵고 힘든 곳에 파견시켰습니다. 또한 저희 어머니는 항상 락관적인 태도로 생활에 임했습니다. 1974년경에 직장암 판단을 받았었는데요. 비록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했지만 그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락관적인 태도 덕분인지 그동안 많이 회복되고 신체가 좋았습니다. 마지막에 돌아가실때에는 직장암이 아닌 심장병으로 중증환자실에 입원했습니다. 그때도  시종 웃음을 잃지 않고 간호사들에게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습니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사업에 대한 열정을 보였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강인 불발정신과 락관주의 정신은 우리가 영원히 따라워야할 바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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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风雪征程——东北抗日联军战士李敏回忆录》插图

        력사는 우리에게 무궁무진한 힘과 계시를 남겨줬습니다.동북항일련군은 항일 선봉대로서 열악한 조건하에서도 백절불굴의 정신과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으로 14년동안 피흘려 싸워 중화민족의 해방과 세계반파쑈전쟁의 승리에 기여했습니다.
        리민동지와 같은 로전사, 항일영렬들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우리의 행복한 생활은 있을수 없습니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에 즈음해 우리는 항일 로전사, 항일영렬들을 추모하며 새로운 각오로 동북항일련군의 정신을 전승해야 합니다. 동북항일련군 정신은 후세에 길이 빛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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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으로 흑룡강조선어방송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 '동북항일련군 로전사 리민의 전설적 이야기' 특별 기획 련재를 마무리합니다.
        애청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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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节目由黑龙江朝鲜语广播制作
内容原文选自由李敏口述,李江、刘颖整理的书籍《亲历东北抗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