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뛰기

놀이유래:

5139.jpg널뛰기는 그네뛰기와 마찬가지로 조선민족의 전통적인 장쾌하고 건전한 녀성들의 놀이이며 민족체육의 하나이다.

지난날에 우리 민족의 녀성들은 해마다 음력 정월 보름날과 5월단오, 팔월추석 등 명절이오면 옷을 차려입고 재미나는 널뛰기를 하면서 즐겁게 놀았다.

널뛰기는 설비가 복잡하지 않고 특별히 넓은 장소도 필요되지 않으며 어느때에나 간단히 놀수 있기 때문에 어린 처녀들로부터 부인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녀성들이 다 즐기는 놀이이다. 널뛰기는 유쾌하고 흥미있는 놀이인 동시에 녀성들의 신체단련에도 매우 유익한바 속담에 ≪정월에 널뛰기를 하면 그해에는 발바닥에 가시 들지 않는다.≫고 한 것은 녀성들이 널뛰기를 하면 몸이 단련된다는 뜻이다.

널뛰기는 크고 긴 널판의 중심부분밑에 목침이나 또는 짚묶음, 가마니뭉치따5141.jpg위를 괴여놓은 다음 널판중간에 한사람이 서거나 앉고 널판 두끝에 한사람씩 올라서서 서로 탄력을 리용하여 공중으로 솟구쳐오르기와 내리구르기를 엇바꾸어 반복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놀이이다.  
   
널뛰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데, 높이 뛰여올라 한바퀴 돌아내려오기, 허리를 뒤로 젖혔다가 내리뛰기, 발을 앞으로 쭉 폈다가 내려오기, 손을 자유롭게 놀리면서 발의 앞뒤 또는 옆으로 벌리면서 률동적으로 뛰는 방법들이 그 실례로 된다.

널뛰기를 할때는 서로 경쟁을 하였는데 지방에 따라 경쟁방법이 조금씩 달랐다. 적지 않은 지방에서는 눈금을 박은 긴 줄을 신발에 매달고 솟구쳐오르는 높이를 재는 방법으로 진행하였다. 널뛰기를 할때에는 명랑하고 유쾌한 흥취를 한결 더 돋구어주는 민요들도 많이 불렀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 녀성들이 즐겨한 널뛰기는 오늘도 근로녀성들속에서 사랑을 받는 민족경기종목으로 5140.jpg발전하여 널리 퍼지고있다. 오늘의 널뛰기경기는 제정된 시간안에 어느 조가 더 높이, 더 보기좋고 재치있게 뛰는가에 따라 승부를 가르는 방법으로 진행한다. 경기방법에는 높이 뛰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곧추뛰기와 재치있게 서로 엇바꾸어뛰기, 재주부리기가 있는데 경기는 보통 2분 내지 3분동안 진행한다. 이를테면 곧추뛰기의 성적은 제정된 시간내에 두 선수가 널을 뛰여 풀어올린 실의 길이를 합하여 계산하며 각 조에서 풀어올린 실의 총길이를 측정하여 등수를 정한다. 성적이 같으면 실수한 차수가 적은 조가 앞에 놓이는데 그 차수가 같으면 다시한번 뛰여서 등수를 정한다.

널뛰기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해석과 전설이 따르고있다. 18세기에 생존했던 류득공은 ≪경도잡지≫에서 널뛰기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있다. ≪항간의 부녀들이 흰 널판을 짚단우에 가로 걸쳐놓고 량쪽끝에 갈라 서서 급히 굴러서 몇자쯤 뛰여올라간다. 그때 몸에 찬 옥소리가 쟁그렁쟁그렁울리고 지쳐 그만두는것으로 락을 삼는다. <그곳 부녀들이 널우에서 춤추는데 이것을 판무라 한다.>고 했다. 이것과 비슷하나 리조초에 류구의 사신이 입조할 때 도리여 그것을 사모해서 본받은것인지?≫ 어떤 학자들은 이런 문헌기록에 근거하여 류구의 한회는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것이 고려시대에 류구로 건너간것이라고 추측하고있다. 또 어떤 학자들은 널뛰기가 말타기나 격구의 영향하에서 생긴것이라고 보고있다. 그리고 민간의 전설에 의하면 봉건사회의 도덕적구속으로 인하여 밖에도 마음대로 나들수 없었던 우리 녀성들이 담장곁에 널을 놓고 뛰여오름으로써 밖을 내다보려는 마음에서, 또한 한 녀성이 봉건관료들에 의해 옥에 갇힌 남편을 걱정하여 높은 담장을 넘겨다보기 위해서 생각해낸것이라는 말도 있는것으로 보아 자세한 것은 알수 없으나 널뛰기가 매우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