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의 신발

상대의 신발은 화(靴)와 이(履)로 나눌수 있다. 화(靴)는 목이 긴 신으로 방한과 방습에 적당하여 북방민족이 많이 사용하였고, 리(履)는 운두가 낮은 남방민족의 신이다.

   통일신라시대의 화는 신분에 따라 재료가 달랐으며, 화대가 달려 있었다. 운두가 낮은 신발로 남녀가 모두 신었고, 남자의 것은 가죽으로, 녀자의 것은 계, 나 등으로 만들었다.

조선시대 들어서 종류가 매우 다양화되었는데, 조선의 남자신을 재료별로 구분하면 피혁제는 화로서는 흑피화, 협금화, 목화가 있고, 혜에는 흑피혜, 분투혜, 투혜, 피초혜, 태사혜, 발박신, 진신 등이 있었다.

초,마제에는 짚신이 서민남녀에게 일반적으로 공용되었고, 정제품은 사대부의 편복에 사용하기도 하였다.

포백제는 가죽에 포백으로 길을 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태사혜, 당혜, 운혜, 사 등을 말한다.

이 외에 유제, 지제, 목제가 있다.

조선시대 녀인들의 신에는 궁혜, 당혜, 운혜, 진신, 미투리, 짚신, 나막신 등이 있었으며, 그 재료로는 가죽, 비단, 아마, 짚, 나무를 사용하였다.

신발의 종류별 구분

피혁제

목화

피물로 만들었으나 뒤에는 전으로 내장하고 외부는 청금선을 둘러 화자의 밖에 보이게 하고, 고급품은 금단으로 꾸몄는데 수화자의 모양과 같다. 가죽은 주로 록피를 사용하였고 신목이 길어 반장화 같이 생겼다.

분투혜,투혜

방한 및 방습용 덧신의 일종. 극한일이나 또는 병이 있고 년로한 사람은 분투혜를 신었고, 진흙에서 혜자우에 분투혜를 신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방한용과 방습용 신이다.

피초혜

신창이 가죽이며, 운두는 초,마로 된 것.

태사혜

남자 마른신. 사대부나 반인계급의 로인이 편복에 신었고, 국말에는 왕도 평상복에 신었다. 울은 형겊이나 가죽으로 하고 코와 뒤축에 흰선문을 새겨 놓은 것.

발막신

마른신의 하나로 상류계급의 로인들이 신어 '발막'이라고도 하였다. 뒤축과 코에 꿰맨 솔기가 없고 코끝이 넓적하며, 가죽조각을 대고 경분을 칠했다.

전신(유혜)

들기름에 절여 만든 것. 진땅에 신는 가죽신으로 신창에 징을 촘촘히 박고 있기 때문에 징신이라고도 한다.

초, 마제

초리

짚신, 왕골짚신, 부들짚신, 엄짚신 등의 이름. 이 가운데 왕골, 부들 등을 가늘게 꼬아 촘촘히 삼은 짚신은 능히 사치품이 될만하며, 엄짚신은 상제가 초상때부터 졸곡때까지 신는 짚신으로 관리라고도 한다.

미투리라고도 하며 짚신보다는 고급품으로 재료는 삼이었으나, 사치해져서 닥, 청올치, 백지, 면사까지도 사용하게 되었다.

  포백제, 유제, 지제, 목제

포백제

   가죽신에 포백으로 겉을 댔기 때문에 포백제로 취급되는데, 태사혜, 당혜, 운혜, 사라능단혜가 이에 속한다.

유제

   놋쇠로 만든 신. 유혜 또는 놋신이라고도 하며, 특수층에서 비올 때 신는 신이다.

지제

   지총미투리도 지제의 일종이며, 우리나라 천자의 혜는 한 가지가 아니어서 승혜, 초리, 지구 등이 있어 종이로써 만든 것이 하서인의 신으로 있었다.

목제

   목극으로서, 옛날에는 '격지'라 하였고, '나막신'으로 통칭되었다. 시골의 청빈한 선비가 신는 것이며, 우청조습(비오거나 맑거나 건조하거나 습한데)에 오래 견디고 헤어지지 않는 것으로 최고라 하였다. 선조조 임진전에 상하가 통착하였는데, 천자나 어린자는 존귀한 사람 앞에서는 감히 착용할 수 없었다.

둥그니신(방한용)

나막신

설피

운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