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자매대>에서 실현한 인생가치

--- 전국10명 최우수판매원, 전국5.1로력메달수상자, 전국제14차당대표대회대표 전옥순에 대한 이야기

 

 

 

석자매다에서 일 보는 상점판매원이라하면  아마 적잖은 사람들은 너무 평범한 직업이라고 인정할것입니다. 하지만 전옥순씨는 평범한 일터로 보이는 석자매대에서 평범치 않은 업적을 쌓아 자신의 인생가치를 실현했습니다.

올해 52세인 전옥순씨는 8-90년대 할빈에서 널리 알려진 모범인물로서 할빈시특등로력모범, 성로력모범, 성우수공산당원, 전국3.8붉은기수, 전국10명최우수판매원, 전국5.1로력메달수상자, 전국제14차당대표대회대표 등 수두룩한 영예를 지녔습니다.

한 평범한 조선족녀성으로서 그제날, 종업원이 3천여명에 달했던 할빈시의 최대백화상점인 할빈시제1백화상점에서 그는 언제봐도 미소어린 눈길로, 열정적이고도 성근한 봉사태도로 하나 또 하나의 <사랑의 송가>를 엮어가면서 수많은 고객들을 탄복시켰습니다.

옥순씨가 상점판매원으로 나섰던 그해는 지금으로부터 36년전인 1975, 10년동란때였습니다. 그해 겨울, 16살 꽃나이 소녀로 초중2학년에서 공부했던 그는 마지막 기회라는 가족들의 뜻에 따라 세상뜬 부친의 사업편제를 이어 받아 국유상점의 종업원으로 일하게 됐습니다.

근심걱정을 모르며 공부해야 할 나이지만 가정형편때문에 일찍 사회에 나와 일해야 하는 막내여동생이 측은하게 느껴져 그의 세 언니들은 그가 일터에 나갈 모든 수속을 다 마친 후에야 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정든 선생님과 친구들과 작별하던 그날, 그는 교정을 떠나기 아쉬워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일찍 철이든 그는 네자매중, 언니 셋이 다 시집갔거나 외지에 있는 형편에서 막내인 자기가 어머니를 보살펴 드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눈물을 훔치고 일터로  나갔습니다.

할빈시경공업품상점 판매원으로 사업에 갓 참가했을 때, 애숭이 소녀여서 긴 작업복을 입고 매대에 나섰건만 애티가 여전했습니다. 하지만 야무진 옥순씨는 속으로 자기가 장차 어떤 사람으로 성장해야겠는가? 하는 문제를 사색했습니다.

음향:

<아버지는 생전에 상점의 평범한 후근일군이였는데 무엇때문에 아버지가 세상뜬 후 여성어린이용품상점의 몇백명 종업원들이 하루 영업을 중지하고 아버지를 위해 추도회까지 열었을까? 그건 아버지가 생전에  맡은 일을 착실히 잘 했고 남을 위해 묵묵히 좋은 일들을 많이 했기때문이야, 나도 아버지와 같은 사람으로 될래!>

침직물매대의 판매원으로서 그는 이를 악물고 업무숙달에 달라붙었습니다. 포장기술을 익히기 위해 늘 어머니 보고 시간을 봐 달라했고 어찌나 노끈을 쥐고 련습했던지 손에 피자욱까지 생겼으며 주산기능을 장악하기 위해서 허심하게 선배들을 찾아 배웠고 밤을 패가며 수판알을 튕겼습니다. 

1982, 할빈시경공업품상점이 할빈시제1백화상점에 귀속된 후 옥순씨는 제1백화상점의 종업원으로 여전히 침직물매대에서 일하게 됐는데 한 판매원으로서 뢰봉정신을 따라배우려면 본직사업에 충성해야 하고 고객들을 따뜻하게 대해야 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봉사하여 당신의 열정적인 봉사를 통해 고객으로 하여금 인간의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해야 한다고 인정했습니다.

판매원을 놓고 말할 때 맹인과 롱아인을 접대하는 일은 비교적 어려운 일이였습니다. 그들을 잘 접대하기 위해 옥순씨는 과외시간을 이용해 롱아학교에 가 방청생으로 벙어리말을 배웠습니다. 

어느 하루, 외지에서 온 두 벙어리처녀가 그의 매대에 오더니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손시늉을 했습니다. 대뜸 그들의 뜻을 알아차린 옥순이는 숙련된 손시늉으로 그들과 뜻을 주고 받았습니다. 그의 매대앞에서 친절한 봉사를 받고 마음드는 침대보를 사게 된 두 벙어리처녀는 그한테 집에 벙어리가 있는가고 물었습니다. 없지만 당신들과 같은 손님들을 위해 벙어리말을 배웠다고 하자 두 처녀는 감동돼 그의 어깨를 부여잡고 흐느끼며 울었습니다. 언젠가 또 한 맹인이 그의 매대앞에 와 침대보를 사려고 서성거리자 옥순씨는 색상과 도안, 규격, 질과 값을 상세히 소개하고 또 대신 하나 골라주고 포장한 후 돈까지 대신 지불해 주고 그를 1층까지 부추겨 내려갔습니다. 그의 열정적인 봉사에 너무나 감동된 그 맹인은 그날, 그의 손을 부여 잡고 연신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뢰봉처럼 유한한 생명을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무한한 사업에 바친다면 평범한 일터에서도 인생의 가치와 리상을 실현할수 있죠.>이는 그가 한 말이였습니다.

언젠가 청년 7명이 우루루 그의 매대에 쓸어와 침대보를 보자고 했는데 제가끔 이것저것 눈에 띄우는대로 다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하냥 그러하듯이 그 날도 그는 열정적으로 그들을 대했습니다. <또 어느 침대보를 보겠어요?> 진렬해 놓은 침대보를 그들의 요구대로 다 꺼내보이고 난 옥순이는 상글상글 웃으며 물었습니다.

<별로 마음에 드는게 없군, 속바지나 하나 살가?> 그들 가운데의 한 키큰 청년이 친구들을 둘러보며 하는 말이였습니다. 10여분간 부산을 피웠던 그들은 나중에 속바지를 사 갖고 돌아섰습니다. 그런데 몇발자국 안 가서 다시 돌아오더니 물건을 또 물리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옥순이는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물려주며 다른 상점에 가 보고 마음에 드는 것이 없으면 다시 와서 골라보라고 말했습니다.

<탄복했습니다. 확실히 모범은 모범입니다. 우리는 꼭 누님을 따라배우겠습니다. > 매대를 떠날 때 그들은 이런 말을 남기고 돌아섰습니다.

그때 옥순씨는 그 말을 무심히 여겼으며 그 손님들도 인츰 잊어버렸습니다. 그로 말하면 그런 일은 흔히 부딪치는 일이였기때문이였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난후 <신화사>기자와 <인민일보>기자가 할빈시제1백화상점에 와 옥순씨를 찾았습니다. 그들의 말을 듣고서야 옥순씨는 그 7명 청년이 목단강철도분국 한 렬차복무소조의 복무원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할빈시제1백화상점에 들렸다가 영예게시판에 옥순씨의 사진이 걸려 있는것을 보고 도대체 어떤가 한번 떠 보자고 든 것이였습니다. 그때까지도 모범에 대해 탄복하지 않았던 그들이 옥순씨 한테서 카다란 교양을 받게 됐던 것입니다. 그런후에 그들은 옥순씨를 본보기로 봉사성을 높여 후진렬차복무소조를 선진으로 전변시켰으며 따라서 <신화사>기자와 <인민일보>기자의 취재까지 받게 됐던 것입니다.

그의 봉사성은 미소에서만 체현된 것이 아니였습니다. 손님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또 손님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아글타글 애쓰는것이 바로 그의 봉사성이 가진 하나의 특점이였습니다.

하루는 한 청년이 그의 매대앞에 달려오더니 성급하게 서둘렀습니다. <빨리 침대보를 하나 주세요, 오늘 결혼날인데 깜빡 잊고 있다가…>

그러자 옥순씨는 재빠른 솜씨로 인츰 표를 떼 준후 결혼용에 맞춤한 침대보를 골라 놓았습니다. 돈을 물고 돌아온 그 청년은 골라놓은 침대보의 도안을 얼핏 보고는 맘에 든다며 두말없이 가방속에 넣었습니다. <잠간만요, 결혼에 쓰겠는데 흠이 없는가 잘 봐야지요.> 침대보를 자세히 훑어보니 실밥이 터진 곳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옥순씨는 새개째나 골라서야 자기가 미리 준비해 놓았던 붉은종이에 곱게 싸서 넘겨주었습니다. <결혼을 축하해요!> 청년은 그만 코마루가 찡해났습니다. <제가 생각지 못한 것까지 생각해 주는군요.>

이처럼 그는 늘 붉은 종이를 준비해 두었다가 결혼잔치에 쓸 침대보를 사는 손님을 만나면 붉은 종이에 싸주며 축하의 말을 해 주었습니다.

사업실천가운데서 그는 판매원의 사업이란 진지한 감정으로 고객을 사랑하고 뢰봉처럼 어려움에 부딪친 사람들의 애로를 풀어주어 사람들로 하여금 판매원들의 평범한 봉사가운데서 우리 사회의 따사로움을 느끼게 해야 한다고 인정했습니다. 하여 외지손님들이 쇼핑할 때 물건이 많으면 불편해 하는 점을 고려해 그들을 위해 작은 물품을 보관해 주어 편히 쇼핑할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자기가 사고 싶은 상품을 사지 못해 서운한 마음으로 상점문을 나서는 고객들의 심정을 헤아려 상품구매예약등기부를 만들었는데 그 등기부에는 손님이 요구하는 물건과 손님의 통신련락주소가 적혀있었습니다. 그랬다가 손님이 요구하는 물건이 오게 되면 인츰 련락을 취해 물건을 사가게 했습니다.                              

    할빈시 왕조신촌에 사는 한 퇴직로동자는 할빈제1백화상점에 오게 되면 잊지 않고 옥순씨를 찾아보군 했는데 언젠가 옥순씨의 덕분으로 사고싶던 침대보를 샀던것입니다. 그때 그 퇴직로동자는 무늬가 돋친 데트론침대보를 사려고 할빈시의 큰 백화상점을 돌며 참빗질하다 싶이 다 훑어 보았으나 끝내 사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옥순씨의 매대에 왔다가 친절한 봉사성을 느낀 그는 자기의 사정을 말했습니다. 그날 옥순씨는 인츰 동기부를 내 놓으며 말했습니다. <여기다 적으세요, 년로한 몸으로 어찌 자주 백화상점에 다니겠어요, 그런 침대보가 오면 제가 알려드리지요.> ,한 주일후 그런 침대보가 상점에 도착하자 옥순씨는 지체없이 그 퇴직로동자에게 알렸습니다. 소식을 듣고 온 그 퇴직로동자는 침대보도 곱지만 처녀의 마음이 더 곱다며 처녀를 봐서도 하나 더 사야겠다고 기뻐했습니다.

     판매원으로서 손님을 몇번 열정적으로 맞아주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였습니다. 하지만 옥순씨처럼 20여년을 하루와 같이 별의별 손님을 한 사람같이 뜨겁게 맞아준다는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였습니다. 1989년의 선택통계에 따르면 1년동안 옥순씨는 연인수 64천여명에 달한 손님을 접대했습니다. 이처럼 많은 손님을 접대하면서 옥순씨는 언제나 뜨거운 열정으로 차 넘쳤습니다. <그의 눈은 언제 봐도 상글상글 웃는다.>며 동료들 모두 그의 봉사성에 대해 마음속으로 탄복했습니다.   

     그 제날 옥순씨의 동료였고 침직물매대의 조장이였던 로월매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음향:

     <…추운 겨울철에 왕조신촌에 있는 창고에 가 상품 나를 때마다 언제나 힘든 일 앞장에 서서 했죠, 병에 걸려 링게르주사를 맞으면서도 하루도 말미를 맡지 않고 일했어요. 봉사태도는 두말할것없이 1류여서 전 상점의 령도든 동료들 모두가 감탄했죠…> 

   언제나 만족을 모르는 그는 봉사성을 부단히 새로운 높이에로 끌어올리기 위해 장병귀의 매대복무예술을 체계적으로 학습했으며 심리학, 언어학, 시장학, 미학, 공공관계학을 배워냈습니다. 한편 공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할빈상업중등전문학교를 다녔고 그 후에는 또 흑룡강경제관리간부학원에 다니며 공부해 끝내 대학졸업증을 손에 쥐였습니다. 피타는 노력으로 그는 1990 11월에 있은 할빈시로동자기술시험에서 <조작기술>, <진렬>,<표계산>에서 만점을 맞았고  전성백화상점계통청년조작기술시범경기에서 련속 몇년간 1등이란 영예를 따냈고 주산계산기술은 상업1급표준에 달했습니다.

옥순씨는 일터에서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해 봉사했을뿐만아니라 또 사심없는 사랑의 마음으로 료양원, 복지원, 맹인진료소, 롱아학교, 철교경비부대, 공장, 기관 등 곳을 자주 찾아 그들이 어떤 계절에 어떤 물품을 수요하는가? 하는 점을 료해하고 문전송달봉사를 했습니다.

그 뿐이 아니였습니다. 어느 하루 한 친구를 통해 도리구조린가에 슬하에 자녀없이 외롭게 지내는 장씨란 오보호량주가 있다는 말을 들은 옥순씨는 주동적으로 상점의 공청단지부를 찾아 단지부의 뢰봉학습소조에서 량주를 보살펴드리자고 제기했습니다. 하여 1979년부터 시작해 일년사시장철, 옥순씨는 늘 뢰봉학습소조의 단원들을 거느리고 장씨로인네 집에 다니며 식량과 남새를 구매해 드리고 옷을 빨고 집안청소도 하고 땔나무도 장만해 드리는 한편 또 설명절때마다 선물을 갖고 가 문안했습니다. 로인이 병환으로 앓으면 옥순씨는 또 로인을 부추겨 병원으로 모시고 가 입원수속을 밟아드리고 퇴근후 저녁마다 와 병간호를 하고 아침이면 또 따끈한 음식을 해 병원으로 가져오군 했습니다. 하여 의사와 간호사들도, 병실의 환자들도 모두다 옥순씨가 로인의 친딸인가고 착각했는데 그럴때마다 안로인은 <우리 량주는 평생 자녀가 없수다, 할빈제1백화상점의 옥순이가 이 여러해 동안 줄곧 우리를 보살펴주었죠, 참말이지 친딸이라 해도 어찌 옥순이 보다 더 잘 하겠소…>라고 말했습니다.

   음향:

임종할 때, 장로인은 옥순이의 이름을 부르며 로친에게 당부했습니다. <난 꼭 옥순이를 봐야 눈을 감겠소…> 그 말을 들은 병원의 환자들은 모두다 감동돼 눈물을 흘렸습니다.

1990, 12, 옥순씨는 전국10대백화상점로력모범순회보고단의 일원으로 북경, 제남, 천진, 심양, 대련 등 20여개도시를 돌며 80여차례의 보고를 했습니다. <석자매대에서 인생가치를 실현하다.>란 그의 보고는 청중들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자아냈고 많은 사람들은 그를 <할빈의 자랑>이라고 칭찬했습니다.

2006년부터 할빈시조선민족예술관에서 사업하게 된 옥순씨는 현재 <안중근의사기념관>관리사업을 맡고 있는데 그 제날 받은 영예에 대해 물을 적마다 늘 웃으며 당과 인민, 조직에서 배양한 덕분이라고 겸손하게 말합니다.                 

  

                                                                         취재: 최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