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창건 90주년 맞이 특별기획보도--"우리 신변의 본보기"--김수길 편


        개혁개방과 더불어 성내 일부 시현에서 조선족 민족경제문화발전 추진과 민족사업촉진을 취지로 하는 민간단체들이 발족되고 있습니다. 연수현 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는 이 가운데서도 우수한 단체로 널리 알려지고 있습니다.

        연수현 조선족사회라면 떠올리게 되는 경제문화교류협회이고 당지 조선족의 권익보호라면 우선먼저 떠올리게 되는 경제문화교류협회입니다. 그만큼 연수현의 민족경제문화교류는 물론 권익보호에서도 조선족주민들의 든든한 뒷심이 되고 있는 협회입니다.

        이 협회를 설립해 지금까지 이끌어오고 있는 분이 바로 연수현 전임부현장 김수길 회장입니다.

        02년 8월에 정식으로 설립돼 9년을 맞고 있습니다. 정년퇴직한 조선족간부, 재직 조선족간부 등 66명 회원을 두고 있습니다. 지난 9년간 해온 사업을 돌이켜보면 한국나들이 등으로 조선족사회가 파동이 크고 한데 우리 협회가 중심작용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경제문화교류협회, 조선족법률봉사중심, 조선족직업소개소 등 간판을 걸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땅으로 인한 분쟁으로 43건을 법원에 정식으로 고소해 그중 41건을 승소했습니다. 2건은 본인들이 제공한 자료 부족으로 실패했습니다. 또 10여 건의 토지문제는 향정부, 촌지도부와 협상해 조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런 분쟁은 토지사용권을 회수하거나 임대계약을 다시 작성하는 등으로 성공했습니다.

        연수현 조선족사회로 보면 남은 인구가 지금 8천여명 되고 토지는 4만여무에 달하는데 우리 협회가 조선족들의 권익보호, 조선족사회 안정수호에서 중심작용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02년부터 5년 시간을 들여 "연수현조선족백년사"를 써냈습니다. 동북은 물론 역사, 문화를 연구하는 한국 전문가, 학자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지금 한국국회 도서관, 독립기념관에도 수장되고 있습니다.

        지난 사업을 돌이켜 보면서 느낀 점이라면 민족사업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는 겁니다. 민족의 존엄을 가지고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문화개발, 발전으로 쟁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지금은 앞이 보입니다.

        연수현 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가 해온 일은 이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민족사업이라면 민족경제발전을 홀시할 수 없다고 인정한 협회는 국내외 인맥관계를 이용해 인력송출사업을 힘써 추진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60여명을 일본, 한국으로 보냈습니다. 또 불우한 이웃돕기, 빈곤한 가정의 학생 돕기 등 복지사업에도 진력해 조선족주민들의 보호자로, 따스한 집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연수현 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라면 정부차원이 아닌 민간단체에 불과하지만 김수길 회장은 협회사업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협회사업에 진력하는데는 그로서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중국체제개혁에서 서정부 대사회를 주장하고 있고 또 민간조직은 정부에서 못하는 일, 못하는 말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민간조직의 생명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는 일도 잠재력이 큽니다. 우리 조선족이 서로 교류하고 사회적 이미지를 높이는 것이 중요한 거죠. 현위, 현정부의 영도아래 우리 민족간부들도 사업하고 있다, 우리 조선족의 이미지를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연수현 조선족사회라면 떠올리게 되는 경제문화교류협회와 이 협회를 이끌고 있는 김수길 회장입니다. 그럼 김수길 회장은 구경 어떤 분일까요.

        네, 김수길 회장의 자아소개를 들어보겠습니다.

        69년에 민풍촌당지수서기를 하다 73년에 가신진정부 당위부서기로 됐습니다. 87년에 현위 규율검ㅅ가우이원회 서기를 담당했고 93년에 현정부 현장직을 맡았습니다. 후에 3년간 조사연구원으로 일하다 2천년에 정년퇴직했습니다.

        65년에 입당해 당령이 46에 달하는데 그중 지부서기 사업을 5년 했고 당위서기 사업을 7년 했고 규율검사위원회 서기로 6년간 사업했습니다.

        지금은 퇴직했지만 연수현 노과학기술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회원이 2백여명에 달합니다. 노일대, 노과학기술일군들과 함께 정부에 참모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일부 사람들이 늙어서 편하게 지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늙었다고 나앉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배우고 젊은이들에게 힘을 보태야 합니다. 지금 신문잡지만 13부 읽고 있고 매일 컴퓨터를 보고 타자를 합니다. 매일매일 배우고 시대를 따라가야 합니다.

         김수길 회장은 40여년간 당사업에 몸을 바쳐왔고 현장직까지 역임해 오면서 연수현의 경제, 사회발전에 기여해온 노 당원, 노 간부입니다. 이 정도라면 은퇴 후에 별다른 사회활동을 하지 않아도 여전히 주위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안온한 노후 생활을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회를 설립하고 민족사업으로 최선을 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네, 김수길 회장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민족간부는 종신직업입니다. 민족사업에는 정년퇴직이 없습니다. 민족이 있어 민족간부가 있고 민족간부의 사명감이 있는 겁니다. 때문에 민족간부라면 민족사업으로 쟁취해야 합니다. 한족간부의 호평을 받고 지지를 받는 민족간부라야만이 성숙한 민족간부라고 생각힙니다.

        늙은이 답게 편하게 보내라는 사라들도 있고 그럴 때마다 감사하다고 말은 하지만 민족의 일에 부닥치면 가만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민족사업은 우리가 하기에 달렸습니다. 민족대우가 없다고 남을 탓할 일이 아닙니다. 나라의 정책이 변한게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탓할 일이라고 봅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선열, 선배들이 다 이렇게 했습니다. 다를바 없습니다. 민족사업에 대한 사명감이 있고 마음에서 우러나서 한 겁니다. 우리가 한다면 민족사업도 희망이 있고 발전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민족간부는 종신직업이고 민족사업에는 정년퇴직이 없다는 그 한마디에서 우리는 민족사업에 대한 김수길 회장의 사명감을 읽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민족사업에 대한 한 공산당원의 식지 않는 책임감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김수길 회장은 중국공산당의 민족정책으로 감사의 마음을 지닌 분이었습니다.

        연수현 조선족 역사가 백년이 되는데 사냥하고 인삼심고 이러면서 정착을 시작한거죠. 처음에는 땅도 없었습니다. 한인들에게 땅을 팔지도 못하게 했고 귀순해야 땅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해방돼서야 땅을 가지게 됐고 정식으로 땅을 타게 됐습니다. 물을 마실 때 우물 판 사람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우리가 지금 땅을 가지고 잘 살 수 있게 된 것도 다 공산당의 덕입니다.

        (지난세기)6-7십년대에 큰 발전을 가져왔지요. 촌마다 학교가 서고 진짜 승승장구였습니다. 그러다 80년대 초기에 약장사를 시작으로 한국에 나들기 시작했고 90년대에는 노무를 하면서 우리 연수현에서 4천명이 한국으로 떠났습니다. 조선족 동네가 텅텅 비다싶이 했습니다. 그러다 2005년부터 다시 땅을 찾기 시작하면서 모이기 시작한거죠. 내 삶의 터전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땅이 농민에게는 생명이라는 것을 알게 된겁니다. 지금은 좋아지는 단계 회복하는 단계입니다.

        네, 이상은 중국공산당창건 90주년 맞이 특별기획보도"우리 신변의 본보기"--김수기 편으로 알아본 한 노공산당원이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