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조선어방송국  중국공산당 창건 90주년 기념 특별기획보도-- “불후의 영령, 동북항일련군 12지대 지대장 박길송.

박길송은 1918년 길림성 왕청현 영창동지역의 한 빈곤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났으며 어려서부터 진보사상의 영향을 받아 학생진보단체인 친목회에 가입해 골간분자로 성장했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박길송은 어쩔수없이 학업을 그만두고 집에 돌아와 농사 짓다가 1933년에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 가입해 항일투쟁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이후 동북항일련군에 참가한 박길송은 일반 전사로부터 재빨리 성장해 퇀 정치부 주임, 부대 지대장 등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됐으며 1937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습니다. 동북항일련군이 가장 어려운 시기에 북만 경성, 철려일대에서 항일투쟁을 견지해온 박길송은 1943년 적들에게 체포돼 모진고문끝에 27세 젊은 나이에 영용히 희생됐습니다.

적들과의 유격전에서 박길송은 뛰여난 지략과 용감성으로 혁혁 전공을 세웠으며 당지에서 전설적인 영웅인물로 널리 전해졌습니다.

, 그럼 박길송 렬사의 영웅사적을 동북렬사기념관 박춘희 부관장을 통해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음향)

철려시 년풍조선족향에 길송촌이 있다. 그만큼 박길송은 특히 철려지역에서 명성이 높은 항일영웅이다.

박길송은 왕청현에서 태여났으며 선후로 소년단, 청년단에 참여한 적극분자였다.

후에 녕안에 옮겨 항일련군 제5, 3군에 가입해 신속히 성장

용감하고 지혜롭기로 소문났으며 철려지역에서 많은 전투 조직해 늘 작은 력량으로 많은 적을 소멸한 전설적인 영웅인물로 전해졌다.

1941년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 박길송은 12지대를 거느리고 철려지역에서 유격전을 벌이면서 항일투쟁을 견지했다.

적에게 체포된후 견강한 의지로 적들의 협박과 회유에 넘어가지 않았으며 불국의 의지를 보여줘 결국 1943년에 희생됐다.

박길송의 전설은 철려지역에서 널리 전해지고 있다. 동북항일군의 유명한 장군 풍중운이 그를 높이 평가했다.

지금도 철려시 년풍조선족향에 가면 항일영웅 박길송을 기념해 그의 이름으로 명명된 조선족마을 길송촌이 있음으로 하여 박길송 렬사의 영령을 길이 추모하고 있습니다.